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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양 Aug 08. 2023

[독후감] 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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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단한 현실과 상상


   이 책의 주인공 모모는 10살 남짓한 남자 아이다. 모모는 어릴 때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졌는데 부모님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커왔다. 모모를 돌봐주는 로자 아주머니 집에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더 있다. 여기에 맡겨진 아이들은 매춘부의 자녀들이다. 로자 아주머니도 젊었을 때는 매춘부였기에 매춘부의 심정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맡아서 키워왔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매춘은 중요한 장치다. 등장인물들이 불행한 삶을 살게 하는 배경이 된다. 매추부의 아들인 모모는 부모의 사랑 없이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불행은 인간을 철들게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모모는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꽤나 성숙하고 어른스럽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어른스러운 모모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게 느껴진다.


   모모가 불행한 현실을 견디는 힘은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 외에도 모모가 만들어 낸 상상 속 존재들의 위로 덕분이다. 암사자, 광대, 힘센 경찰과 우산으로 만든 친구 아르튀르까지 허상의 존재들은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고 이들을 통해서 위로받고 공감받으며 고달픈 현실을 버틴다. 불행한 현실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로 창의적인 상상이 큰 역할을 한다. 환상은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는 통로가 된다.


   "나는 철학자다. 카츠 선생님의 뒤쪽 벽난로 위에는 새하얀 돛이 여럿 달린 돛배가 한 척 놓여 있었다. 나는 불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 아주 먼 곳, 그래서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 배를 허공에 띄워 몸을 싣고는 대양으로 나아갔다. 내 생각엔, 바로 그때, 카츠 선생님의 돛배에 올라탄 그때, 나는 난생처음 먼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때 그 순간, 비로소 나는 어린이가 되었다. 지금도 원하기만 하면 나는 카츠 선생님의 돛배에 올라타고 혼자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글픈 이유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이해하고 몰입했던 인물은 로자 아주머니였다. 그녀의 나이는 60대 정도로 연로하고 노쇠했다. 일층부터 칠층까지 오르내리기 버거울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고 치매 증상도 있다. 아픈 그녀가 나이 들어 갈수록 자신을 잃어가고 쇠약해지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특히 그녀는 자신이 병(病)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보다 병든 자신이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을 더 걱정했다. 늙고 병든 자신을 아무도 찾지 않을 때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은 부식되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로자 아주머니를 보면서 늙어갈수록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이 들수록 거동이 불편해지고 마음이 쇠약해질 때 기댈 수 있는 존재는 가족뿐이니깐.


   또 그녀는 늙어감에 따라 자신의 아름다움이 빛바래지는 것을 슬퍼했다. 매춘일을 할 때의 젊고 예뻤던 자신을 '진짜' 자신이라고 믿는 것 같다. 많은 남자들이 예쁜 자신을 좋아했고 그 환호를 느낄 수 있는 찬란한 젊음을 그리워하기에 늙어가는 모습이 슬펐을 것이다. 현재의 내가 만족스럽지 못하기에 사랑했던 과거의 나를 '진짜 나'라고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내가 만났던 어른들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IMF 이전 잘 나갔던 성공을, 이성에게 인기가 많았던 20대의 젊음을, 전국 팔도를 여행했던 자신의 건강을. 모두가 자신의 과거의 모습에서 정체성을 찾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내가 아니라며 부정한다. 하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기억에 매몰되는 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을 살고,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인정해야 한다. 현재를 인정할 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안락사, 삶의 의미는?


   책의 후반부에서는 안락사가 자주 등장한다. 로자 아주머니는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입원은 극도로 싫어했다. 병원은 온갖 방법으로 환자를 숨만 쉬게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삶의 질은 상관없이 생명 연장만 시킨다는 것이다. 후반부를 읽는 내내 안락사를 놓고 과연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생각했다. 아직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기에 제쳐 두고, 다만 내 가족이라면 무엇이 더 나은지 고민해 봤다. 그리고 안락사를 마주한 게 나라면, 나는 어떤 마음일지도 같이 말이다.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라 대답할 수 없지만 앞으로도 내가 고민할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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