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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엄마와 아빠의 현재

난 왜 이렇게 힘든 걸 잘 참죠?

 엄마는 거의 평생 지휘만 알고 살았다. 그러다 아빠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부터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엄마 말을 빌리자면, 이게 다 '아빠 압박용'이란다. 엄마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야 아빠가 은퇴를 한 다음에도 열심히 새로운 일을 찾을 것 같다고.



나: 요즘 지휘할 기회가 줄어서인지 다른 일도 많이 알아보는 것 같아.

엄마: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없으니까 무료하다는 생각도 들고, 시간을 너무 함부로 보내는 것 같아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중이야. 찾다 보니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요양보호사 자격증, 근로 지원인 양성 교육도 수료했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 같아. 사실 아빠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고. 여러 가지 일을 해 보다 보면 정말 잘 맞는 일을 만날 수도 있지.     


나: 그중에서 제일 먼저 해본 일이 근로 지원인이었잖아. 어떤 일이야?

엄마: 쉽게 말하면 장애인이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해.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를 지원하는 거지. 조금 경계가 애매하긴 한데 장애인 근로자가 업무를 할 수 있긴 하지만 부수적인 업무를 하기가 힘들다면, 그 부수적인 일을 조금 도와주는? 

 나는 어떤 회사 식당에서 근로 지원인을 했어. 거기서 일하는 장애인 근로자 업무가 설거지였는데, 나는 그릇을 옮겨주거나 일지 기록해주거나 그런 부수적인 일을 돕는 게 일이었지.     


나: 내가 듣기에는 경계가 조금 애매한 것 같아. 

엄마: 사실 그런 점 때문에 빨리 그만두게 된 것 같아. 내가 담당한 장애인 근로자분은 지체장애 지적장애 모두 있는 분이셨어. 그분이 옆에서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간단한 일만 지원하게 되지 않더라고. 그리고 내가 봤을 때는 몸이 불편하지 않더라도 그 속도로 설거지를 계속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엄마도 옆에서 그 일을 돕다 보니까 금방 몸이 아프더라.

 일을 시작할 때 사회복지사에게 들은 설명과 상황이 전혀 다르게 흘렀어. 아마 당시 그 회사에서는, 장애인을 고용하면 근로 지원인이 함께 오니까 인력 두 명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      


나: 엄마한테도 힘들었으면 그 장애인 근로자도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엄마: 나도 그분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어. 그러면서 같이 차를 마셨거든. 근데 그분이 섭섭하다면서 그러더라.

 ‘내가 더 열심히 할 테니까 그냥 나오면 안 되나요? 그냥 나오면 안 되나요?’

 근로 지원인이 빨리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내가 왔을 때부터 ‘빨리 그만 둘 거죠? 오래 있을 건가요?’ 이런 질문을 많이 했거든.     


나: 그 얘기 들으니까 나도 마음이 아프다. 본인이 더 열심히 할 테니 나와달라는 말이…….

엄마: 나도 그랬어. 내가 정말 미안하다고 힘들어서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그러더라. ‘난 왜 이렇게 힘든 걸 잘 참죠?’라고. 사실 내가 봤을 때는 그 회사에서 그분에게 시키는 일이 합리적이지 않았어. 그냥 해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다 보니 나도 무리하게 함께 일을 하게 됐고.      


나: 나도 그분 생각하면, 엄마가 더 일했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거기 나가서 아팠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제 새 일을 하고 있잖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아파트 카페에서. 일은 어때?

엄마: 하루에 5시간씩, 토요일은 풀타임으로 아파트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참 좋아. 일단 가까워서 좋고. 내 체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나: 엄마가 갑자기 바리스타를 생각한 건 신기한 것 같아.

엄마: 어느 날 아파트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모집한다는 거야. 그때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어서 도전하지 못했어. 근데 다음에 기회가 또 올 수 있잖아. 그래서 자격증을 따 뒀지. 신기하게 자격증을 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원 한 분이 그만두면서 자리가 생겼어.      


나: 자격증 따려고 몇 달 동안 학원 다니고 고생했잖아?

엄마: 학원 다니는 기간도 정말 감사한 일이 많았어. 수강생들 대부분 20대에서 30대였어. 딸, 아들보다도 젊은 친구들이랑 같은 반이었지. 필기는 웬만큼 잘했는데, 실기는 젊은 사람들 따라가기가 어렵더라고. 진짜 힘들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희가 그랬잖아. ‘엄마, 젊은 사람들과 이것저것 배워야 성장도 하지. 걱정하지 말고 도전해 봐.’ 그 말에 용기를 얻고 열심히 배웠지. 

 너무 고마운 게 같은 반 학생들이 나를 많이 도와줬어. 진도 못 따라가는 것도 알려 주고, 많이 배려해 줬지. 그전에는 젊은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가까이서 함께 배우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지. 거리두기 완화되면 언제 한 번 모이기로 했어. 너무 고마워서 내가 한 번 쏘려고 해.      


나: 편견을 하나 없앤 것만으로도 엄마한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

엄마: 응. 젊은 사람들이랑은 세대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고 단정 짓는 부분이 많았거든. 근데 아니더라고. 고마워서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해 보고 싶긴 한데. 주책일까 봐 참고 있어. 그렇게 다들 도와줬는데도 실기를 잘 못해서 늘 네 명이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했어. 선생님이, ‘네 명 모이세요.’ 하면 자동으로 남아서 실기를 몇 번 더 해 보고 그랬지.      


나: 그래도 결국 실기 시험을 잘 통과했네?

엄마: 응. 근데 처음에는 운이 너무너무 안 좋았어. 추첨을 했는데, 제일 앞 번호에다 기계도 구식 기계가 걸렸어. 첫 번째 순서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긴장조차 되지 않더라고.     


나: 결과는 어땠어?

엄마: 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어. 나머지 공부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잘할 수 있냐고 묻더라고. 그게 너무 미안했지. 시험 보기 전까지 못하다가 시험 볼 때 잘하는 사람 좀 별로잖아.     


나: 그렇긴 해. 학교에서 그러면 재수 없다고 욕먹잖아.

엄마: 응. 너무 당황스럽더라고. 떨지 않았던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던 것 같아. 그게 정말 중요해. 첫 번째 순서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한 거거든. 실기 끝나고 보니까 선생님이 뒤에서 초를 재고 있더라고. 아마 시간 잰다는 걸 알았다면 긴장해서 못했을 거야.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들을 다 보고 시험을 친 거니까 긴장됐을 것 같아.      


나: 그렇게 열심히 해서 진짜 바리스타가 된 기분은 어때?

엄마: 일하기 전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주식 창을 계속 봤어. 숫자 하나에 집착하게 되고, 중독되는 것 같더라. 그 작은 핸드폰만 종일 들여다보고. 일을 시작하니까 몸을 움직이고, 사람도 보게 되고 그런 게 좋더라고. 카페는 온전히 내 공간 같아. 원하는 음악도 틀어 놓을 수 있고.

 물론 처음 한 사흘 동안은 레시피를 열심히 외웠어. 나름 스트레스였지. 컵은 또 종류가 왜 그렇게 많은지, 얼음 넣는 컵, 작은 컵……. 그리고 메뉴도 통일해 줬으면 좋겠는데 다들 왜 그렇게 제각각 메뉴를 시키는 건지. 지금은 하루에 150잔 만드는 건 뚝딱이야.     


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뭐야?

엄마: 가장 하고 싶은 건 음악이야. 그런데 잘 모르겠어. 카페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다 모르지. 그저 건강만 하다면 계속 이렇게 일하면서 지내고 싶어.




 이렇게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빠 압박용인데, 그럼 아빠 생각은 도대체 어떨까?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보면서 압박을 느끼고 은퇴 후에도 일을 찾아 나갈 생각이 있을까? 아니. 인터뷰를 해보니 아빠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나: 아빠가 은퇴를 앞두고 있잖아? 혹시 특별한 계획이 있어?

아빠: 특별한 계획은 없어. 근데 회사에서 1년 정도 더 일했으면 해서, 1년 정도 더 일하게 될 것 같아. 예전에 아빠가 40대였을 때, 상사 중 한 명이 50살 정도에 명예퇴직을 했어. 사실상 해고였지. 그때는 그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10년만 더 일할 수 있었으면 싶었어.      


나: 그때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도 있었잖아.

아빠: 그지. 그만큼 40대에도 자리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60살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해. 한편으로는 내가 괜히 후배 자리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굳이 일 년 더 다니는 게 맞을까? 떠날 때를 알고 가는 게 아름답다던데.     


나: 60살이나 된 사람한테 1년 더 임원 자리를 부탁하는 걸 보면, 아빠가 그만큼 필요한 거 아닐까? 

아빠: 회사에서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어쨌든 아빠가 그만두면 그 자리를 대체할 후배는 분명히 있겠지.     


나: 다시 회사 들어간 게 98년도니까 벌써 20년이 넘었네. 많이 힘들었지?  

아빠: 벌써 20년이나 흘렀는지도 몰랐네. 너 대학 졸업 때까지만 버티자, 그다음엔 정훈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자. 그렇게 버티자. 버티자 하다 보니까 20년이 지났어. 은퇴하고 나면 여행도 다니고 싶고, 편하게 즐기고 싶어. 실업급여도 받고 조금 여유 있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리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내 목표야.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      


 아빠, 근데 엄마는 아빠가 은퇴해도 일했으면 좋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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