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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30년째 친해지는 중입니다.

가족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현재 회사원이다. 여느 직장인처럼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회사에서 평일을 보내다 주말에는 남자친구도 만나고 친구들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한 주가 다 지나 있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참 많다.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긴 연휴 중간에 갑자기 아프고 열이 나는 일이 많다. 그러다 피곤하면 누워서 넷플릭스를 시청하면서 하루를 위로해 준다. 나름대로 바쁘다 보니 가족들이랑 특별히 뭔가를 나눌 시간이 없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안부를 묻긴 하지만, 그 이상의 깊은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새삼스럽기도 하고. 차라리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다. 


 너무 고단하고 힘든 날들에는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이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 괜히 잔소리 같고, 괜히 듣기 싫고.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는 내지 못했던 짜증이, 풀지 못하고 쌓아 온 피로가 엉뚱하게 가족에게 향해 버린 적도 많다.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가족 에세이를 쓴다는 것, 그것도 가족과 인터뷰를 해서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고 녹취록을 정리하고, 또 최종적으로 글을 정리하면서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도 몇 번 있다. 그렇지만 이미 가족들에게 장황한 계획을 설명했고, 가족들 역시 바쁜 시간 쪼개서 인터뷰에 응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름에 시작했던 작업이 이렇게 겨울이 돼서야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 힘든 순간은 있었지만 이 작업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엄마는 남자친구 없었어?’라는 큰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궁금증이 해결되면서 엄마가 왜 그렇게 내 이성 교제에 예민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들은 표면적인 면만 보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말들이었다.      


 엄마는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관계 속에서 딸이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혹시라도 상처를 받고 힘들어할까 봐 관계를 시작하고 맺는 것에 있어 더욱 조심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엄마의 많은 것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그랬다. 나한테 힘든 일이 생기면, 엄마가 더 힘들어했다. 난 어릴 때부터 피부에 각종 알레르기를 달고 살았다. 지금도 피부 질환 때문에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를 달고 살지만 심할 때는 그만 살고 싶었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마다 내 피부를 보면서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어야 하는데.’하고 가슴을 치던 사람이 엄마였다. 난 엄마가 아픈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픈 적은 많지만, 대신 아프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      


 아빠랑 인터뷰를 할 때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했다. 아빠는 기억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따스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와 얘기를 하고 있을 때마다 아빠 기억 속에 내가 함께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가 할머니랑 있는 모습이 그려지고, 큰아빠랑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하며 노는 모습을 멀찍이 서서 보는 기분이었다. 

 아빠 눈물을 처음 본 것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당황하긴 했지만 안 그런 척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아빠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일 때,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아빠의 눈물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 마음을 열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제는 자식에게 눈물을 보여도 될 만큼 의지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걸까?


 동생은 인터뷰 시간을 내기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못 만난 친구들도 많았을 테니 약속도 많았을 거고, 올해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을 테니까. 그런데도 누나인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것저것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고맙다. 동생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3 때 두 달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에 가장 놀랐다. 심지어 그 시기에 나는 동생과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동생과 인터뷰를 할 때보다 오히려 엄마랑 인터뷰할 때 동생 생각이 많이 났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어릴 때 동생을 미워했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금 이렇게 사이가 좋은 동생을 미워했다는 것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동생은 우리 집 식구 중에 내 식성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다. 혼자 요거트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요거트를 사 온 적도 있고 피자가 먹고 싶어서 피자를 사갔는데 동생도 피자를 사 온 적도 있다. 이런 동생을 미워하고 갖다 버리라고 했다니. (심지어, 동생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성비가 맞지 않아서 지금처럼 체육대회를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나는 가족을 통해 잊고 있었던 것도 떠올리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도 30년 째 친해지는 중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30년 째 친해지는 중' 매거진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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