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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Jul 27. 2021

누나도 모르는 동생 이야기

같이 살아도 모르는

 동생은 어릴 때부터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자랐다. 사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동생을 착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까지 착한 건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정훈이는 남들한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다. 또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 남매는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지냈다. 그래서 이번 가족 인터뷰도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쉬울 거라고 예상했던 동생 인터뷰는 생각보다 난항에 빠졌다. 그의 대답은 대부분 ‘없어, 아니, 글쎄?’ 따위였다. 평소에 얘기할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 너 예전이랑 좀 달라졌다. 생각보다 냉소적이네. 너도 알아? 왜 그런 것 같아?

동생: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나도 내가 많이 변한 것 같긴 해.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때는 언제야?

동생: 몇 년 동안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냈잖아. 그 시간 생각하면 내가 뒤쳐진 것 같고 그래. 그리고 고등학교 때 다쳤던 적도 있었잖아.


나: 고등학교 때?

동생: 응. 고1 때도 다치고, 고3 때도. 그때 수술하고 입원하고 그러면서 혼자 생각을 많이 했어. 사실 고1 때 다친 건 코뼈가 완전 주저앉았었지. 친구가 던진 공에 맞아서 그렇게 되었는데, 수술하고 힘들긴 했어도 그 당시는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기는 아니어서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어. 

 그런데 고3 때는 좀 달랐지. 초중고 12년 동안 공부해 왔던 삶이 수능 성적표로 평가받고 결정되잖아. 그래서 고2쯤 되니까 자연스럽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고2 말부터 성적이 비슷한 친구랑 나 세 명이서 도원결의 하듯이 비장하게 공부를 시작했어. 정말 미친 듯이 공부해 보자! 셋이 공부를 시작하니까 정말 가슴에 불이 난 것처럼 악착같이 하게 되더라. 물도 안 마시고 밥도 빨리 먹으면서 공부했어.     


나: 그렇게 하면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아?

동생: 그때는 내가 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신기하게 피곤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다치는 바람에 그런 생활을 더 이상 못하게 됐지. 그 기간 동안에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잔 적이 없어. 그때는 정말 잠이 달더라고. 5분 자고 일어나도 달콤하고. 

     

나: 근데 그렇게 공부만 했는데 어쩌다 다치게 된 거야?

동생: 누나, 내가 어떻게 다치게 됐는지 몰랐어? 한 5월쯤에 다쳤어. 우리가 그때 최대한 밥을 빨리 먹고 공부하는 게 목표였거든. 그래서 가장 먼저 급식 먹으려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다 넘어졌어. 엄청 아프더라고. 근데 공부해야 하니까 계속 공부했지. 근데 점점 발이 퉁퉁 붓고 나중에는 걷기도 힘들어지더라. 정말 아팠는데도 며칠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공부하고 지냈어.      


나: 너무 미련했던 거 아니야? 엄마가 몰랐어?

동생: 그 당시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겠다 싶었어. 독하게 공부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 시간이 지날수록 아예 걷지를 못하겠더라고. 단순히 접질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그때라도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그래도 병원에 가지 않고 공부했어.

 누나 알지? 나 습관성 어깨 탈골이 있잖아. 우리 반에 어떤 친구가 넘어지면서 내 어깨를 잡고 넘어졌는데 그때 어깨가 탈골된 거야. 그래도 보통 다시 잘 껴졌는데 그날은 정말 팔이 안 껴지고 식은땀이 나고 몸이 덜덜 떨리더라. 그러다 기절했어. 그때 선생님이 119 불러 줘서 병원에 갔는데, 어깨 맞춘 다음에 의사가 보더니 다리가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묻더라. 그때 알았지. 인대가 완전히 끊어져서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걸.          

나: (한숨) 그래서 바로 수술했어?

동생: 부기가 빠져야 된다고 해서 며칠 기다려야 했어. 그러다 6월에 수술했는데 입원해서 재활 운동도 하고 그랬지. 그 시기가 너무 우울하더라. 마음먹고 공부할 준비를 했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은 달려가고 있는데, 난 왜 다쳐서 이러고 있나 싶었지.

 그러다가 방학이 되었고, 우울하게 흐지부지 지내다가 개학하면서 다시 마음을 잡으려는데, 집에 혼자 있다가 또 어깨가 빠진 거야. 한참 다시 들어가지 않더라고. 시간이 더 지나면 기절할 거 같아서 기절하기 전에 혼자 119 부르고 응급실에 갔는데, 엄마 아빠가 연락받고 응급실에 왔거든? 그때까지도 팔이 다시 맞춰지지 않았어. 팔을 끼우면서 내가 엄청 고통스러워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두 분이 괴로워하는 거야. 부모님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또 더 괴롭고 우울하고 슬펐어. 엄마랑 아빠가 날 보고 있던 그때 모습이 생각나. 몰랐는데 부모님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고.     


나: 연속적으로 다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평소 생각하는 것도 달라질 것 같아.

동생: 계속 다치고 아프니까 갑자기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인생에 그것들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두 달 동안 재활하고 학교에 갔는데, 또 아프고 그러니까 그냥 다……. 그래서 그냥 공부보다 건강하고 그런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지.

 수능 성적표. 그게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가치관도 많이 흔들리고. 그때부터 많이 우울하기 시작해서 한두 달 동안은 거의 사람들이랑 얘기를 안 했어. 그때 정말 혼자 많은 생각을 했네.     


나: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난 왜 몰랐지? 두 달 동안 가족들하고도 이야기 안 했어?

동생: 가족들하고도, 친구들하고도 말 안 했어. 누나가 잘 모를 수도 있어. 방에서 안 나와도 그냥 고3이니까 공부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지나갔겠지. 그런데 학교 친구들하고도 거의 말을 안 해서, 친구들은 많이 걱정했어. 평소 쾌활하던 친구가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그러니까. 그래도 공부를 하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뭘 못하겠더라고. 무얼 해도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없고,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중요한 건지도 모르겠고.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자려고 누우면 계속 고민거리가 떠오르고 우울해서 그냥 영화를 봤어. 차라리 영화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대신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느낀 점 같은 것을 썼어. 

어찌 됐든 나름대로 건강한 해결 방법이었던 것 같아.           


나: 듣다 보니, 엄마가 널 걱정했던 게 생각난다. 너 고3인데 영화만 본다고 걱정했던 것 같아. 혹시 그 시간이 후회되지는 않아? 더 공부할 걸 이런 생각이 든다거나. 

동생: 내가 수능을 못 봤지만,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아. 나는 그때 더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었어. 정말……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 임용고시 몇 년씩 떨어졌을 때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어. 

 만약 그때 무리해서 어떻게든 공부하려고 했으면 더 우울해서 견디지 못했을 거야. 수능을 좀 못 보더라도 이렇게 살아있는 게 더 좋은 거잖아. 

 그렇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리고, 많은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날 약간 냉소적인 사람으로 만든 것 같기는 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소소한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나: 그럼 요즘 널 행복하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건 뭐야?

동생: 맛있는 음식하고 술? 행복이 진짜 별게 아니야. 난 돈을 진짜 많이 안 쓰는데, 얼마 전에 5만 원도 안 하는 스피커를 샀어. 그 스피커로 음악 듣는데 정말 좋더라. 내 돈으로 내가 스피커를 사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거. 가족들하고 얘기하고, 여자친구랑 맛있는 거 먹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보낼 때 가장 행복해.     


 그의 인생 전체를 곁에서 지켜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동생에게도 내가 잘 모르는 시간과 모습이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단순히 동생이 고3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만 생각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영화만 본다고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도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엄마의 걱정을 들으면서, 그 1년을 제대로 공부 안 하는 동생이 조금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동생아, 미안).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동생은 극단적인 생각을 하면서까지 그 시간을 버텨 내고 있었다니……. 가족이란 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참, 멀리 떨어진 존재구나. 동생에게 그렇게도 힘들었던 시간이 잘 지나간 것도, 이제는 동생이 소소한 일들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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