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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할아버지는 어딜 가신 걸까?

터벅터벅

 2000년 초, 엄마는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와 이별을 겪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이번엔 아빠 차례였다. 내가 보기에 아빠의 이별은 엄마의 이별보다 훨씬 더 지독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 시 전까지 수차례 실종되셨고, 할머니는 치매로 거의 10년을 고생하셨다. 

      


나: 아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몇 년 동안 치매로 고생하셨잖아. 실종된 적도 많고.

아빠: 처음 할아버지가 실종된 건 여행을 가서였어. 교회에서 할아버지랑 할머니들을 모시고 충청도에 있는 온천에 당일 여행을 갔어. 할아버지가 그때도 치매를 앓고 계셨으니 사람들이 좀 잘 챙겨 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나 봐. 게다가 할아버지는 성격이 엄청 급하셔. 그래서 먼저 온천을 하고 밖으로 나온 거야. 그러고 없어졌지.     


나: 그럴 거면 교회에서 여행을 모시고 가지 말아야지. 그게 뭐야?

아빠: 나도 황당했어. 처음에는 멀리 못 가셨겠지 싶어서 교인들이 주변을 찾았대. 그런데도 못 찾으니까 그제야 우리한테 전화를 한 거야. 바로 큰 고모랑 운전해서 내려갔어. 아무리 뒤져도 할아버지를 못 찾겠는 거야. 미칠 노릇이지. 경찰서에도 다 신고하고. 혹시나 해서 서울에 와서도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근데 정말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니까 어떻게 찾을 길이 없더라.      


나: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 같아.

아빠: 그런데 밤 11시쯤? 할아버지가 혼자 집으로 오셨어.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봤어. ‘아버지,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하니까, 오천 원이 있어서 택시를 타고 왔대.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로 오려면 몇십만 원이 필요할 텐데. 이해가 안 되더라고. 혹시 누가 도와준 게 아닌가 싶어서 계속 수소문해 보고, 할아버지한테 다시 여쭤보기도 했는데 제대로 기억도 못하시더라고. 결국 할아버지가 어떻게 서울까지 혼자 찾아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야. 누가 도와준 거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      


나: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 정말.

아빠: 할아버지는 정말 뼈가 굵은 분이었어. 아빠도 손이 큰 편이지만 아빠보다도 손이 컸어. 신체는 굉장히 건강하신 분이야. 그리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하셔. 그래서 도와달라는 말을 못 해. 그런데 그 조합이 아플 때는 정말 최악이야.     


나: 왜?

아빠: 치매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데, 몸은 건강하니까 어딘가로 계속 걸어가셔. 그런데 또 길을 잃어도 남한테 도와 달라고 못하니까 그냥 계속 정처 없이 걷는 거야. 본인이 지칠 때까지 계속 걸어. 그러니 계속 사라지는 거지.      


나: 맞아.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실종되셨잖아.

아빠: 한 번은 그런 일도 있다. 그때도 실종되셨을 땐데, 며칠 동안 찾아봤는데 3일 동안 나타나질 않으셨어. 그때 정말 걱정을 많이 했지. 오죽하면 무연고 시체가 발견되면 가서 확인해 보기도 했어. 혹시나 할아버지가 어디서 돌아가셨을까 봐. 남자 시체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으면 인상착의를 물어봐. 그래서 인상착의가 흡사하면 확인하러 갔어. 그렇게 노심초사 기다리는데 그다음 날, 서래마을에서 연락이 온 거야. 그래서 가 보니까 할아버지가 계시더라고.

 할아버지네 집이랑 그쪽은 걸어서 서너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인데, 며칠 동안 어떻게 주무셨는지, 어떻게 지내셨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 그럴 때마다 아무리 여쭤봐도 대답을 안 해주셔. 노원구에서 발견된 적도 있고.      


나: 할아버지는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빠: 글쎄. 그래서 그렇게도 물어봤지. 그런데도 대답이 없으셨어. 사실 아빠는 예전부터 할아버지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이 많았어.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에 군인이었거든. 징용도 다녀오셨고, 6.25 내내 군인이셨어. 그런데 치매 걸리기 전에 그 시절 이야기를 물어도 대답이 없으셨어. 원래 말수도 적으셨고, 아니면 말하기 싫을 만큼 끔찍하니 잊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딱 하나 얘기해 주셨던 게 있어.     


나: 어떤 얘기?

아빠: 할아버지가 6.25 때 얘기를 딱 한 번 해 준 적이 있어. 전투 중이었는데 부대에서 낙오한 적이 있대. 그래서 산골 안에 있는 어느 마을에 갔대. 근데 지역이 조금 애매해서 국군이 올 수도 있고 인민군이 올 수도 있는 지역이었대. 그 마을에 가니까 사람들이 빨리 군복을 벗으라고 하더래. 왜냐하면, 행여나 인민군이 와서 군복을 보면 바로 죽거나 인질로 잡혀서 큰일 날 수가 있거든. 그래서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이 주는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군복을 벗어서 다 태웠대. 얼마 뒤에 실제로 인민군이 온 거야.      


나: 군복 입고 있었으면 바로 죽을 수도 있었겠네?

아빠: 그렇지. 근데 그 당시 사람들이 군인을 구분하려고 옷을 벗겨 본대. 총이 정말 무거워서 어깨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은 군인이라고 판단했던 거지. 인민군들도 할아버지 생김새가 군인 같으니까 옷을 벗어 보라고 했는데, 신기하게 할아버지한테는 굳은살이 없었대. 아마 워낙 건강하고 뼈도 굵은 분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 덕분에 죽지 않고 사신 거지.     


나: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얘기네?

아빠: 정말 그렇네. 어쨌든 할아버지가 실종된 상태에서는 파출소만 가면 게임 끝이야. 근데 그런 데는 또 안 가니까 미치는 거지. 지칠 때까지 여기저기 걸어 다니셨던 것 같아. 어느 날에는 할아버지가 또 없어져서 경찰서에 신고하고 아빠도 할아버지를 찾으러 다녔어. 한 두세 시간쯤 찾았을까? 목이 말라서 차를 세워 두고 편의점에 물을 사러 갔어. 그때 할아버지가 내 앞을 지나가는 거야. 나를 앞에 두고 그냥 지나쳐 가시기에 따라가 봤어. 궁금했거든. 도대체 어디를 다니시는지 말이야. 그렇게 하염없이 따라갔지. 그런데 그냥, 터덜터덜 걸어. 계속 걷기만 해.  어디를 가시려고 했던 걸까. 계속 터덜터덜. 결국에 내가 지쳐서 ‘아빠!’ 하고 불러 봤어. 그러니까 돌아보시더라고.

할아버지는 정말 어디를 가시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뭘 찾고 있었던 걸까?      



 이 얘기를 하는 아빠가 무척이나 답답하고 씁쓸해 보였다. 결국 할아버지가 찾고 있던 걸 대신 찾아주지 못해서일까? 할아버지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해서일까?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닭발’이다. 지금은 잘 먹지도 않는 닭발. 그런데 유치원 다니던 어린 시절, 그 어린애가 닭발을 무척 좋아했다. 닭발에 맛을 들인 건 다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닭발 킬러였는데, 그래서인지 할아버지 집에는 늘 양념된 닭발이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다섯 살도 안 된 어린 손녀에게 닭발을 하나 건넸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할아버지가 주니까 한입 먹었는데, 그건 신세계였다. 그때부터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 닭발을 함께 먹었다. 내가 너무 많이 먹었는지 진심으로 혼내신 적도 있다.


 “무슨 어린애가 닭발을 이렇게 빨리 먹어.”


 저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닭발이 들어있는 통을 봉인하고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뒀다. 손녀가 닭발 좀 먹었다고 할아버지가 그렇게 손녀를 혼낼 일인가? 


 외할아버지는 내가 잘 먹으면 당신 먹을 것도 덜어 주던 분이셔서 더욱 비교가 됐다. 그때부터였을까.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들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닭발을 빨리 먹으면 할아버지는 본인의 닭발을 내어주기보다 먹는 속도를 올리는 그런 분이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실종되고 다시 나타날 때마다, 뭔가 할아버지답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라져도 반드시 나타날 것 같았다. 그랬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세상에서 정말 사라졌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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