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어떻게 보내셨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10년 가까이 혼자 사셨다. 할머니는 좁은 방에서 늘 혼자 텔레비전을 봤다. 채널 돌리는 것도 잘 못해서 늘 한 개 채널만 보고 계셨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했다. 사랑하는 아빠의 하나뿐인 엄마가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게 싫었다.
그래서 살가운 손녀가 되기로 다짐했는데, 막상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냥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서 무심하게 지나갔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할머니도 치매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도 나를 보면 무척 반가워하셨는데, 사는 문제를 뒤로 하고 좀 더 찾아뵐 걸…….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또 든다.
나: 예전에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모시고 살았으면 했다고 했잖아.
아빠: 그랬지. 우리 집이랑 할머니 집이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아빠는 늘 매주 할머니를 보러 갔지. 사실 갈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어. 말 상대도 없고, 좁은 방에서 가만히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을까? 어떨 때는 자식들을 못 알아볼 때도 있었어. 근데 큰 아빠나 작은 아빠를 못 알아본 적은 있어도 아빠를 못 알아본 적은 없으셨지.
나: 나도 할머니 더 찾아뵙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할머니한테도 아빠한테도 미안해.
아빠: 그건 당연한 거야. 할머니는 네 엄마가 아니잖아. 그리고 어렸을 때 같이 살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그러니 그러기가 쉽지 않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굉장히 외로워하시긴 했어.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고향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큰 누나랑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고향에 갔지. 치매 오기 전이라, 기억을 더듬어서 그분 집까지 찾아갔어.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 사람이 정말 집에 계신 거야. 대문에서도 안방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그분이 보이더라고. 인기척이 들리니까 그분도 할머니를 쳐다봤어. 서로를 알아본 거지.
나: 와, 거의 몇십 년만의 만남일 거 아니야.
아빠: 서로가 너무 반가운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그분한테 뛰어갔어. 그러다가 넘어지면서 평상에 어깨를 부딪쳤어. 그 순간 탈골이 됐지. 노인네가 얼마나 아팠겠어. 바로 쓰러지더라고. ‘악!’ 하면서.
나: 끔찍하다. 젊은 사람도 탈골되면 엄청 아팠을 텐데.
아빠: 소리를 엄청 질렀어. 그리고 집에 있던 그분, 그분 며느리도 난리가 났지. 갑자기 별안간 누가 집에 오더니 넘어지고 쓰러져서 다친 거잖아. 큰 고모랑 아빠가 할머니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병원으로 갔는데 어깨를 맞출 수 있는 의사가 없더라고. 결국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갔어. 그 와중에도 할머니가 죽을 것 같다고 소리치고, 난리였지.
나: 병원에서는 어깨 제대로 맞췄어?
아빠: 다행히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었어. 할머니를 보더니 바로 상황 파악하고 담요로 어깨를 싸서 빼더니 확 끼워 맞추더라고. 그렇게 여행이 마무리됐지. 결국 할머니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과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올라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렇게 뛰어가다가 넘어졌을까. 할머니가 많이 외롭구나. 누가 많이 보고 싶구나.
나: 그러네. 할머니도 친구가 있었을 테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
아빠: 마음이 아파.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셔서. 사람이 고생을 해도 적당히 해야 되는데 할머니는 고생을 해도 너무 했어. 그때 여행 가서도 외식하면 돈 버린다는 생각이 박여 있는 거야. 그래서 절대 안 먹는대. 아무것도. 이제 그런 거 사 드릴 수 있다고 해도, 바뀌지가 않아. 아무리 말을 해도. 고생하는 게 몸에 배어 버린 거지. 인이 박힌 거야.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셨으니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