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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아빠의 전성기

신나 보여서 좋은 아빠

 엄마와 결혼하고 일을 그만뒀던 아빠는, 1998년쯤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때 아빠의 나이가 30대 중반쯤이었으니, 생각해보면 지금 나에게는 '고학번 오빠' 정도 되는 나이다. 


 사실 어릴 때 아빠를 원망한 적이 꽤 많았다. 왜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일을 안 하지? 왜 아빠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안 벌어오지?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왜 아빠는 우리 집을 가난하게 만들었지? 


 그때 나는 아빠가 엄청나게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원망을 해도 그런 원망을 다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넓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저 내 또래의 청년이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를 원망하던 나보다 훨씬 더 힘든 건 그 원망을 받아내고 있던 아빠였을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 다시 취업을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나: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예전이랑 달라진 게 있어?

아빠: 아빠가 다시 일을 시작한 게 1998년이었잖아. 그때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그랬던 거 알지?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여파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을 때였어. 정말 힘든 시기에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덕분에 경제적으로 숨통은 트였어. 어떻게 보면 30대였을 때보다 더 건강하게 지냈던 것 같아. 아빠가 원래 축구를 좋아했는데 여기저기서 축구도 많이 하고, 정말 활발하게 지냈어. 

 업무로 보면 아빠가 입사하기 전에 의약분업이라는 제도가 생겼어. 지금은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약국에서 약을 받지만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나: 그때 기억나. 뉴스 보면 의사들이 반대했던 것 같은데.

아빠: 의약분업은 의료 업계 혁명 같은 일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 의사들에게 집중되었던 권한이 분산되기도 하고, 또 약의 유통 구조 자체가 완전히 변하는 일이었어. 의약분업 전에는 제약업계에서 의사나 병원에 술 접대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행사가 많았지. 다시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그런 일이 많이 줄었더라고.

 그 시절 의약분업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김영란법, 선샤인 액트 같은 제도가 생겼어. 그러니 예전보다는 업무상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나: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적 있어?

아빠: 아빠가 담당했던 약 중에 정말 좋은 약이 있었어. 그 약을 대체할 수 있는 약이 없고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약이었지. 원래 비슷한 역할을 하던 약이 있었는데, 내성 발생률이 너무 높아서 계속 먹을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아빠가 담당했던 약은 내성이 거의 생기지 않았어. 말이 안 되는 거지. 정말 많이 팔렸어. 당시에 국내에서는 한 가지 약을 100억 정도 팔면 블록버스터 급 성공이라고 했어. 아빠가 담당했던 약은 그보다 10배 이상 팔렸지. 정말 기록적인 수치였어. 아빠가 그 약과 관련된 본부의 본부장을 하고 있을 때여서 마냥 신났지.     


나: 진짜 전성기라는 말이 어울린다. 아빠 예전에 신문에 나왔던 것도 기억나.

아빠: 아! 어느 날 어떤 기자가 연락을 해 왔어. 기자가 병원 교수님한테 제약 회사 직원 소개 기사에 쓸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대. 그런데 어떤 교수님이 나를 추천했다는 거야. 놀랍게도 그 교수님은 평소 제약회사 직원을 잘 만나 주지 않는 분이었어. 그래서 아빠는 그 교수님이 연구 중인 분야를 생각해서 그분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들을 늘 추리고 정리해서 보내드렸어. 그게 좀 새롭고 좋으셨나 봐. 

 그래서 기자가 직원 추천해달라고 하기에 나를 추천하셨대. 그 덕에 인터뷰도 하고 신문에도 실렸지.     

 



 이때 이야기를 하는 아빠가 너무 신나 보여서 좋았다. 40대였던 아빠를 생각하면 정말 ‘전성기’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아빠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었다. 아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와중에 운동까지 하러 다니기가 눈치 보였던 것 같다. 


 아빠는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축구를 많이 했다. 그 시절 아빠는 강하고 빨랐다. 오죽하면 아빠가 뛰면서 내 옆을 지나가면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은 아빠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한 적이 많았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애라서 아빠는 늘 동생보다 약간씩 느리게 달렸다. 당시 나는 동생보다는 아빠를 천 배 이상 사랑했으므로, 아빠를 응원했다. 누가 봐도 아빠가 동생에게 일부러 져 주는 것이 눈에 보여서, 아빠가 괜히 더 자랑스럽고 멋져 보였다. 그때의 난 아빠가 영원히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언제까지나 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동생은 더 젊어지고, 아빠와 엄마는 더 나이가 들었다. 우습게도 우린 어릴 때처럼 지금도 환갑이 된 아빠, 엄마와 가끔 운동 시합을 한다. 달리기도 하고 탁구도 치고 배드민턴도 치고 족구도 한다. 아빠는 더 이상 동생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그냥 우린 이렇게 지낸다. 남들이 보면 우리가 환갑인 부모님이랑 시합해서 이겨 먹는 불효자식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엄마랑 아빠가 더 이상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부러 더 그런다.     

 

PS. 우리는 어버이날에도 용돈을 그냥 드리지 않는다. 동생과 함께 집 안 곳곳에 숨겨 두고 보물 찾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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