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 보여서 좋은 아빠
엄마와 결혼하고 일을 그만뒀던 아빠는, 1998년쯤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때 아빠의 나이가 30대 중반쯤이었으니, 생각해보면 지금 나에게는 '고학번 오빠' 정도 되는 나이다.
사실 어릴 때 아빠를 원망한 적이 꽤 많았다. 왜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일을 안 하지? 왜 아빠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안 벌어오지?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왜 아빠는 우리 집을 가난하게 만들었지?
그때 나는 아빠가 엄청나게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원망을 해도 그런 원망을 다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넓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저 내 또래의 청년이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를 원망하던 나보다 훨씬 더 힘든 건 그 원망을 받아내고 있던 아빠였을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 다시 취업을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나: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예전이랑 달라진 게 있어?
아빠: 아빠가 다시 일을 시작한 게 1998년이었잖아. 그때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그랬던 거 알지?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여파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을 때였어. 정말 힘든 시기에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덕분에 경제적으로 숨통은 트였어. 어떻게 보면 30대였을 때보다 더 건강하게 지냈던 것 같아. 아빠가 원래 축구를 좋아했는데 여기저기서 축구도 많이 하고, 정말 활발하게 지냈어.
업무로 보면 아빠가 입사하기 전에 의약분업이라는 제도가 생겼어. 지금은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약국에서 약을 받지만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나: 그때 기억나. 뉴스 보면 의사들이 반대했던 것 같은데.
아빠: 의약분업은 의료 업계 혁명 같은 일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 의사들에게 집중되었던 권한이 분산되기도 하고, 또 약의 유통 구조 자체가 완전히 변하는 일이었어. 의약분업 전에는 제약업계에서 의사나 병원에 술 접대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행사가 많았지. 다시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그런 일이 많이 줄었더라고.
그 시절 의약분업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김영란법, 선샤인 액트 같은 제도가 생겼어. 그러니 예전보다는 업무상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나: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적 있어?
아빠: 아빠가 담당했던 약 중에 정말 좋은 약이 있었어. 그 약을 대체할 수 있는 약이 없고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약이었지. 원래 비슷한 역할을 하던 약이 있었는데, 내성 발생률이 너무 높아서 계속 먹을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아빠가 담당했던 약은 내성이 거의 생기지 않았어. 말이 안 되는 거지. 정말 많이 팔렸어. 당시에 국내에서는 한 가지 약을 100억 정도 팔면 블록버스터 급 성공이라고 했어. 아빠가 담당했던 약은 그보다 10배 이상 팔렸지. 정말 기록적인 수치였어. 아빠가 그 약과 관련된 본부의 본부장을 하고 있을 때여서 마냥 신났지.
나: 진짜 전성기라는 말이 어울린다. 아빠 예전에 신문에 나왔던 것도 기억나.
아빠: 아! 어느 날 어떤 기자가 연락을 해 왔어. 기자가 병원 교수님한테 제약 회사 직원 소개 기사에 쓸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대. 그런데 어떤 교수님이 나를 추천했다는 거야. 놀랍게도 그 교수님은 평소 제약회사 직원을 잘 만나 주지 않는 분이었어. 그래서 아빠는 그 교수님이 연구 중인 분야를 생각해서 그분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들을 늘 추리고 정리해서 보내드렸어. 그게 좀 새롭고 좋으셨나 봐.
그래서 기자가 직원 추천해달라고 하기에 나를 추천하셨대. 그 덕에 인터뷰도 하고 신문에도 실렸지.
이때 이야기를 하는 아빠가 너무 신나 보여서 좋았다. 40대였던 아빠를 생각하면 정말 ‘전성기’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아빠가 다시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었다. 아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와중에 운동까지 하러 다니기가 눈치 보였던 것 같다.
아빠는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축구를 많이 했다. 그 시절 아빠는 강하고 빨랐다. 오죽하면 아빠가 뛰면서 내 옆을 지나가면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은 아빠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한 적이 많았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애라서 아빠는 늘 동생보다 약간씩 느리게 달렸다. 당시 나는 동생보다는 아빠를 천 배 이상 사랑했으므로, 아빠를 응원했다. 누가 봐도 아빠가 동생에게 일부러 져 주는 것이 눈에 보여서, 아빠가 괜히 더 자랑스럽고 멋져 보였다. 그때의 난 아빠가 영원히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언제까지나 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동생은 더 젊어지고, 아빠와 엄마는 더 나이가 들었다. 우습게도 우린 어릴 때처럼 지금도 환갑이 된 아빠, 엄마와 가끔 운동 시합을 한다. 달리기도 하고 탁구도 치고 배드민턴도 치고 족구도 한다. 아빠는 더 이상 동생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그냥 우린 이렇게 지낸다. 남들이 보면 우리가 환갑인 부모님이랑 시합해서 이겨 먹는 불효자식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엄마랑 아빠가 더 이상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부러 더 그런다.
PS. 우리는 어버이날에도 용돈을 그냥 드리지 않는다. 동생과 함께 집 안 곳곳에 숨겨 두고 보물 찾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