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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엄마가 이별할 때

호상이라는 것

 2000년에 있었던 일 중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난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정말 특별한 분이었다. 동생 정훈이가 태어난 이후에 사람들은 모두 정훈이 얘기만 했다. 지금이야 정훈이 얘기만 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정훈이가 나의 세상을 망친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했다. 


 세상에 정훈이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줄 어른은 없나? 


 맨날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는 늘 내 편이 돼줬다. 내 기준에서 정훈이보다 날 더 사랑해주고 아껴줬던 사람은 외할아버지뿐이었다. 상장을 받아오면 만 원씩 용돈을 줬고, 내가 좋아하는 홍시를 남겨뒀다가 나에게 건네기도 했다. 언제 한 번은 외할아버지 집 밖에 있는 창고 유리를 깬 적이 있었다. 그냥 도망갈까 고민하다가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고 외할아버지 집에 들어갔다. 잘못을 고하자 용기가 대단하다고 칭찬하던 외할아버지. 그런 외할아버지가 2000년에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나: 나한테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엄청 특별한 분이었어. 두 분이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셔서 나도 엄청 슬펐거든. 엄마는 더 힘들었겠지?

엄마: 사실 사람이 죽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 워낙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던 분들이니까 그런 순간이 더 빨리 올 거라는 생각은 했어. 특별히 아프신 곳 없이 계시다 돌아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고. 남들은 호상이라는 말을 하더라고.      


나: 사람이 죽는 데 호상이라는 게 있을까?

엄마: 아프지 않고 편하게 돌아가셨으니까. 두 분 다 그렇게 크게 아픈 곳도 없었고, 치매 같은 것도 없었고. 어느 날 주무시다가 그다음 날 일어나지 않으셨잖아. 그런 걸 사람들이 호상이라고 하더라고.


나: 엄마도 그걸 호상이라고 생각해?

엄마: 음... 근데 나는 어머니, 아버지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커. 용돈 한 번 제대로 못 드렸거든. 결혼하고 나서 계속 상황이 어려웠잖아. 그래서 마음껏 용돈 드린 적도 없이, 늘 도와달라는 말만 했는데……. 막내딸이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만 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게 너무 죄송해. 조금만 더 사셨으면 딸이 새 집 사는 것도 보고, 용돈도 실컷 드려보고 그랬을 텐데…….     


 정말 사람들은 장례식장에 와서 ‘호상’이라는 말을 했다. 어린 나도 그 단어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든 넘을 때까지 큰 병 없이, 치매도 없이 잘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평소처럼 잠드시고 다음 날 깨어나지 않으셨다고. 그래서인지 장례식장 분위기도 무겁지 않았다. 


 엄마도 장례식장에 찾아온 손님들을 바쁘게 맞았고, 음식을 날랐다.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과 웃으면서 얘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엄마가 슬프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다 외할머니를 화장하러 가는 길에 엄마는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큰소리로 울었다. 걷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크게 울었다.


 그때 알았다. 어른이 되어도 부모님과 이별하는 것은 슬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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