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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Oct 24. 2021

기억이 한 곳으로 모이는 순간

21세기를 앞두고

 동생은 1993년생이다. 내년이면 서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실감 나지 않는다. 늘 기절하고 아프다고 울던 어린 동생이, 이제 건강하게 자라 벌써 서른이라니. 93년에 태어난 동생에게 1990년대 기억을 묻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너무 어려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족 모두를 인터뷰하다 보니 기억이 한 곳에 모이는 순간이 있다.     




나: 네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뭐야?

동생: 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따뜻한 기억은. 내가 어릴 때 무슨 어린이집 인가 유치원을 다닐 때였나 봐. 거기서 엄마랑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칠 시간이 되니까 아빠가 왔어. 근데 아빠가 입구에서 얼른 뛰어오라고 손짓하더니 팔을 벌리고 있더라. 그 모습이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    




 동생이 가지고 있는 이 따뜻한 기억에 대해서는 아빠가 먼저 얘기한 적 있었다. 


아빠: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 형편이 정말 힘들어졌지. 그래서 나랑 네 엄마가 큰 고모네가 하는 가게를 도와주러 다녔어. 그때 넌 유치원을 다녔고 정훈이는 어린이집에 맡겨 두고 일을 했지. 정훈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힘든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고. 애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않았어.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정훈이를 데리러 갔는데 정훈이가 반가운지 막 뛰어나왔던 기억이 있어. 그래서 나도 팔을 벌리고 정훈이를 안아 줬어. 그 기억이 굉장히 선명해. 


 아빠는 그 선명한 기억 때문에 아직까지 스스로 가장에 대한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와 내 동생 정훈이가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빠는 스스로 우리 집의 가장이란다.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가족이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찌릿하고 뭉클했다. 아빠의 퇴사로 힘들었던 상황은, 다행히도 1998년 아빠가 재취업에 성공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대, 21세기가 왔다. 2021년인 지금 21세기라는 단어를 내뱉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하다. 너무나 당연히 21세기이기 때문일까?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때 TV에는 별별 소식이 다 나왔다. 2000년이 되면 종말이 온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고, Y2K라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도 자주 들려왔다. 그 뉴스를 보면서 ‘Y2K는 가수인데 뭐가 문제라는 걸까?’하는 생각을 했다. 뉴스에서 말하는 Y2K는 컴퓨터 설계 오류와 관련된 단어였고, 내가 알고 있는 Y2K는 그 당시에 꽤 유명한 그룹 이름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시작해서 대학교에 입학한다. 동생은 초등학교에 다니다 고등학생이 된다. 엄마와 아빠는 40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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