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티제 Oct 24. 2021

차라리 정선이를 만나는 게 낫겠다

소개팅에서 현타를 느끼고

 통계청의 2020년 혼인 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90년 평균초혼연령은 남자가 27.79세, 여자가 24.78세다. 참고로 현재는 각각 33.23세, 30.78세다. 부모님이 결혼한 시기를 생각해보면, 엄마는 약간 결혼이 늦은 편이긴 하다.      




나: 엄마가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잖아. 근데 당시에는 그 나이도 노처녀라고 했다던데.

엄마: 조금 늦은 편이었지. 그렇다고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압박하거나 하진 않았어. 그리고 나도 종교가 기독교이다 보니 기도를 많이 했어. 남자친구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해 줬어.      


나: 소개팅? 엄마가 소개팅도 했어?

엄마: 친구가 잘 나가는 사업가라면서 소개팅을 해 줬지. 근데 생각보다 나이가 너무 많은 거야. 내 입장에서는 완전 아저씨였어. 그 사람도 나한테 나이에 비해 너무 순수하다면서 자기랑은 안 맞을 것 같다나? 나도 싫었는데, 잘됐지 뭐. 첫 소개팅은 맹탕으로 끝났어.     


나: 그 뒤로 또 소개팅한 적 있어?

엄마: 항공사 기장이랑 소개팅한 적도 있어. 그때는 왠지 느낌이 좋았어. 뭔가 괜찮은 사람, 나랑 맞는 사람이 올 것 같다는 기대감? 근데 보자마자 ‘아,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어. 그 사람이 이상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거든. 외모적으로 내가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아빠 보면 알겠지만, 내가 얼굴 보고 그러는 타입은 아니잖아.      


나: 절대 아니지.

엄마: 그런데도 못 만나겠더라고. 그분은 내가 마음에 든다고 세 번만이라도 만나자고 했어. 그런데 딱 한 번 만나고 못 보겠더라고. 몇 번 더 볼까 생각을 할 때마다, ‘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만 들었어.

 그 외에도 방송국 PD 하고도 소개팅한 적도 있어. 그 사람은 그나마 괜찮았어. 똑똑하고 깔끔하고. 내가 마음에 든다고 연락도 굉장히 자주 했어. 근데 알고 보니까 이단이었어. 지켜야 하는 수칙이라면서 뭘 말해 주는데 그게 다 이상한 거야. 주변에서는 그게 뭐 어떠냐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지.      


나: 소개팅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

엄마: 아, 이건 아니다. 특히 기장이라는 사람 만났을 때는 머릿속에 ‘땡땡!’ 이런 경고음이 울리는 느낌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아닌가 싶어. 그 당시에도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 20대 초반에 연애를 한 뒤에 상황이 그렇게 돼 버리다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근데 소개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잠깐이나마 만나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이럴 바엔 차라리 정선이(아빠 이름)를 만나는 게 낫겠다.’     


나: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

엄마: 소개팅하면서 아빠에 대한 마음이 조금 달라졌잖아. 그즈음에 아빠가 나를 좋아하는 티를 조금씩 내고 있었어. 근데 사귀지는 않으니까, 아빠 친구들이 그러더라고. ‘정미는 이제 노처녀고, 정선이는 앞으로 잘 나갈 일만 남았는데 정선이가 아깝다.’ 그러면서. 나는 지는 꽃이고 아빠는 피는 꽃이라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     


나: 그래? 그런데 그 말……. 엄마가 나한테도 했던 말이잖아. 

엄마: 그러니까, 음……. 어릴 때부터 친구로 잘 지내면서 신뢰와 좋은 감정이 있었던 건 맞고. 최종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친구들이 나보고 ‘지는 꽃’이라고 말했던 일 때문인 것 같아. 소개팅하면서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그 뒤로는 결혼이 급물살을 탔지.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나 혼자 생각하게 되는 포인트가 두 개 있었다. 


 첫 번째, 엄마의 소개팅 얘기. 나도 소개팅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보통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갑자기 분한 마음에 하게 된 소개팅이었다. 소개팅 전에는 나름 설레기도 했으나 소개팅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소개팅이 끝난 후에는 괜히 더 전 남자친구가 보고 싶은 적이 많았다. 근데 엄마가 소개팅 한 뒤에 ‘차라리 정선이를 만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 너무 웃겼다. 생각의 흐름이 너무 똑같아서.


 두 번째, 엄마가 친구들에게 ‘지는 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으면서 나에게 비슷한 말을 꽤 여러 번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에게 서른 되기 전에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면서 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엄마는 두려웠을 것 같다. 내가 당신처럼 남들보다 늦게 결혼을 하게 된다면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지는 꽃’이라는 얘기를 들을까봐……. 그리고 그 말에 상처를 받게 될까 봐. 그래서 내가 빨리 결혼하길 원했고, 나를 설득하다가 저런 말들을 내뱉은 것이 아닐까? 정말 아이러니했다. 엄마는 당신이 받은 상처를 나에게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전 07화 엄마는 모태솔로가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