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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것들을 찾아서: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나의 가장 빛나는 것들을 찾아서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나의 가장 빛나는 것들을 찾아서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영국의 극작가 던컨 맥밀란의 모노 드라마이다. 국내에서는 2018년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처음 공연되었으며, 2021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두번째 시즌이 공연되었고, 2022년 강동, 마곡, 의정부에서 세번째 시즌이 진행 중이다. 던컨 맥밀란이 각색한 조지 오웰의 <1984>가 2017년에 공연된 적은 있지만, 그가 직접 집필한 작품으로는 국내에처 처음 공연된 작품이다. 두번째 작품은 연극 <렁스>로, 2020년과 2021년에 공연되었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과 <렁스>는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잠시 놓치고 있던 무언가에 대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우울증과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렁스>는 환경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여러분의 가장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극장 로비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여러분의 가장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포스트잇과 펜이 놓여져있다. 포토존에는 각자의 가장 빛나는 것들이 써있는 포스트잇들이 붙어있었다. ‘막히지 않는 퇴근길’,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일찍 퇴근한 팀장님’, ‘아빠의 흐뭇한 미소’, ‘강아지와 공놀이를 할 때’ 등 사소하지만 각자의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여러가지 문장들이 써있었다. 어떤 것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이 순간’이라는 단어를 쓰고 객석에 입장했다. 


 주인공은 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서 빛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쓰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밤에 몰래 TV 보기, 노란색, 줄무늬 양말, 롤러코스터, 길 가다 누군가 넘어졌을 때. 이 리스트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는데, ‘같은 내용이 반복되면 안 된다’, ‘정말로 삶에 활기를 주어야 한다’, ‘물질적인 것이 많으면 안 된다’이다. 7살의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시작된 이 리스트는 때론 멈추기도 하고, 의미를 잃기도 하지만 100만이라는 숫자를 채우며 삶이 계속해서 빛나도록 만들어준다. 비록 이 리스트가 엄마가 슬픔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주인공은 이 리스트를 통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행복들이 빛나도록 하였으며, 사랑을 했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게 된다. 공연이 시작되어도 객석의 조명이 거의 꺼지지 않는데, 90분 동안 모두가 조명을 받으며 100만 개의 리스트가 그려내는 여정을 함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객석을 채우고 있는 관객 한 명 한명이 ‘빛나는 것’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관객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여정


 객석에 입장하면 배우는 이미 무대 위에 나와서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관객들에게 핸드크림이나 손 소독제를 주며 소통을 하고 있다. 마치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모임이고, 우리는 그 모임의 참석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주인공은 관객 한 명한테 다가가서 ‘저의 수의사가 되어주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그렇게 관객이 주인공의 수의사가 된 순간, 우리는 단순한 참석자가 아니라 인물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된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양말 강아지, 아빠, 병원에서 만난 언니, 연인 샘, 밴드 등의 인물을 관객이 연기하고, 커튼콜 때 함께 인사를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갑작스럽게 무대에 오른 관객들이지만, 단 한 명도 허투루 연기하지않는다는 것이었다. 11월 25일의 양말 강아지 ‘퍼피’는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이 ‘나는 어떤 사람이었어?’하고 물은 질문에 대한 ‘너는 너였어. 너는 행복해보이기도, 슬퍼보이기도 하는 사람이었지만, 행복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었어.’라는 대답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걸 듣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쓴 리스트를 읽었지만,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아빠가 주인공에게 ‘고맙다’라는 한 마디를 전하는 장면에서 ‘새별아, 고맙다.’라고 대사를 하기도 했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의 주인공 역할은 성별과 나이에 상관 없이 연기를 할 수 있고, 작품 내에서 인물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런 이 작품에서 아빠의 ‘새별아, 고맙다.’라는 한 마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고, 그 대사를 들었을 때의 공기는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의 아빠를 연기한 관객은 아빠가 된 순간부터 주인공의 아빠로서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랬기에 진실된 감정으로 연기를 하고, 그 감정이 관객과 주인공에게 닿았을 것이다. 양말 강아지와 아빠 외에도 모든 이들의 이 짧은 참여가 각자의 빛나는 순간이 되었고, 그날의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빛나는 것 리스트를 미친듯이 써내려가던 주인공에게도 엄마를 아프게 했던 우울증이 찾아온다. 더이상 리스트를 쓰지 못하게 된 순간. 빛나는 것 보다 그 빛을 꺼버리는 어둠이 더 커진 순간.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빛나는 것으로 느끼던 주인공이 그 빛나는 순간들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울증이 찾아온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조명도, 음향도 최소화된 이 작품에서는 오로지 텍스트를 통해 이 복잡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의 여정을 ‘함께’하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공감한다. 삶을 살다보면 빛보다 어둠의 힘이 더 강하고, 어둠에 잠식당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빛을 발견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 몸은 우울감에 잠식된다. 주인공이 우울증 치료를 위한 집단 상담 장소에 갔을 때 비어있는 관객석 하나에 앉아서 대사를 시작한다. 그 순간 우리 역시 그들중 하나가 된다. 주인공은 버린줄 알았던 빛나는 것 리스트가 모아진 박스를 들고와서 무대 가운데에 붇는다. 어두운 상자 속에 숨겨져있던 빛나는 것들이 다시 한 번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밤에 몰래 TV 보기, 노란색, 줄무늬 양말, 롤러코스터.’ 그는 한때 빛났던 소소한 것들을 다시 읽으면서 잃었던 빛을 발견한다. ‘직접 만든 인형이 생각보다 귀여울 때, 사랑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할때’. 그렇게 멈춰있던 리스트는 다시 시작된다. 100만 번째 리스트 까지. ‘100만, ‘처음으로 새로운 음반을 들을 때.’ 주인공이 새로운 음반을 듣는 것이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우울에 잠식되기 시작할 때도 주인공은 음악을 듣는다. 이 항목이 100만 번째 리스트가 되며 극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여겨지던 순간이 다시 빛나는 순간이 되며 주인공의 삶에 다시 빛이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그 빛이 결코 특별하고 희귀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 알려준다. 우리 삶의 빛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던 것이다. 어디에나 있기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글: 예술도서관 에디터 리니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3기 졸업생 리니는 지난 3년 동안 300회가 넘는 관극을 하며 예술의 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짧게는 90분, 길게는 약 180분 동안 무대 위에 펼쳐지는 세계가 위로가 되고, 용기와 힘을 주는 과정을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작품을 보고 친구가 해줬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이 작품이 흥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켰다면 성공한거다. 나를 변화시켜주었기에 이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알리고 싶고, 더 나아가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한 작품이라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창작자라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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