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뒤편에서 드럼을 두드리던 아드리앙의 이야기
세상의 뒤편에서 드럼을 두드리던 아드리앙의 이야기
‘드럼이 진짜 엄청난건요, 악기가 없어도 드럼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암전 속에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된다. 드럼을 두드리는 아드리앙의 소리이다. 조명이 들어오면 빈 무대에 의자만 놓고 앉아있는 아드리앙이 있다. 사실 무대 위에 드럼은 없었다. 발을 구르고, 손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암전 속에서 드럼 소리 처럼 들렸던 것이다. 연극 <온 더 비트>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지만 끊임없이 드럼을 치던 소년 ‘아드리앙’의 이야기이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와 <맥베스>, 뮤지컬 <그라운디드>의 제작사 ‘프로젝트 그룹 일다’의 새로운 작품으로, 이번 작품 역시 모노드라마이다. 악기가 없어도 어디에서나 연주할 수 있는 드럼과 같이, 세상의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사회의 뒷편에 있는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할머니의 유품인 LP판에 담긴 음악을 통해 리듬을 느끼기 시작한 아드리앙은 세제통을 두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드럼을 연주하게 된다. 아드리앙의 귀에 들리는 리듬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한다. 그런 아드리앙을 엄마는 걱정의 시선으로, 베르나르 아저씨는 분노로, 학교 친구들은 비웃음으로 바라본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끊임없이 연주하는 아드리앙은 진짜 드럼을 손에 넣기 위해 집과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드럼과 음악에 진심이었던 소년 아드리앙은 사실 자폐아이다. 그의 음악을 이해하던 소녀 세실이 그에게 다가가기 전까지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비트를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아드리앙이 그의 드럼 ‘티키툼’을 얻고, 밴드를 구성하고, 티키툼이 불타는 모습을 마주하며 베르나르 아저씨를 살해하기 까지 그의 여정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드리앙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베르나르 아저씨’는 사실 아드리앙의 친아빠이다. 하지만 베르나르의 폭력적인 행동에 아드리앙은 그가 친아빠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110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아드리앙의 비도덕적 행동이 여러번 등장한다. 엄마와 베르나르 아저씨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는 것을 시작으로,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는 행동, 동생에게 돈을 주고 숙제를 부탁하는 것, 친구들과 마약을 하는 것 등의 행위가 등장한다. 결국 마지막 부분에는 전자 드럼을 얻기 위해 옆 집 아저씨의 차를 훔쳐서 드럼과 바꾸는 상상까지 하고, 실제로는 자신의 드럼을 불태우는 베르나르 아저씨를 살해한다. 경찰차의 불빛을 자신을 환호하는 화려한 조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모습을 통해 도덕적인 인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아드리앙의 사회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결국 1차 사회화 기관인 ‘가족’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드리앙에게 충분한 사랑이 전달되지 않았기에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고, 도덕성 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행동을 하게된 것이다.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아드리앙은 지역에 열리는 페스티벌에 가서 밴드 음악을 듣는다. 페스티벌에서 아드리앙은 드럼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무대 뒷쪽으로 넘어간다. 이 장면에서 아드리앙이 객석으로 넘어오는데, 공연을 보는 관객 모두가 드럼 소리를 듣기 위해 무대 뒷편에 모인 사람들이 된다. 다시 무대로 돌아간 아드리앙을 보는 순간, 무대 벽이 페스티벌 무대의 뒷편같이 보인다. 아드리앙의 이 이야기는 결국 ‘사회라는 무대의 뒷편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더 비트>라는 연극을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은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희생당한 자폐아 아드리앙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그의 세상에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학로 TOM 2관에 모인 것이다. 사회의 뒷편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외면하곤 하는 우리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드럼을 연주하는 아드리앙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작품 속에서 아드리앙에게만 들리던 그의 ‘고스트 노트’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순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준다. 커튼콜 때 이메진 드래곤스의 ‘Rise Up’을 연주하며 조명이 들오는 순간이 그러한 확장의 순간이라 느꼈다.
I’m broken in the prime of my life
So embrace it and leave me to stray
I would always open up the door
Always looking up at higher floors
- <Rise Up>, Imagine Dragons
아드리앙은 정적은 소리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음이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는 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결국 언젠가는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적 속에서 깨닫는다. ‘산다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한테 음표 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우리도 결국엔 언젠가 사라지잖아요.’ 아름다운 것, 심지어는 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아드리앙이 관객 한 명 한 명을 집어주며 하는 이 대사는 별거 아니라 여길 수 있는 이 순간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아드리앙을 통해 세상의 빛과 어둠을 모두 경험하고 극장 밖으로 걸어나온다. 아드리앙이 우리의 삶을 비춰주었던 것 처럼, 우리도 우리 세상 뒷편에 숨어있는 또 다른 아드리앙들의 삶을 비춰줄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