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hile you can,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해
Love while you can,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해
‘안녕, 나야. 오늘 비행기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만약, 내가 널 안 만났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그날 그 공원 기억나? 넌 두번째 파병을 마치고 돌아왔고, 네가 나한테 인사한 순간 너와 함께하는 평생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어. 알잖아. 내가 늘 만약이라는 상상에 푹 빠져 살았던거. 만약, 내가 그날 그 공원에 안 갔더라면, 또, 케이트가 아니라 루카스를 따라갔더라면 어땠을까.’
살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지 앞에서 단 한 가지의 선택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선택지를 만나고 또 만나며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상상하며 그때의 선택에 만족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뮤지컬 <이프덴>은 인생의 두 갈래 길 앞에 놓인 여성 엘리자베스가 던진 ‘만약’이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혼 후 10년 만에 뉴욕에 돌아온 엘리자베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새로운 삶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옆집에 사는 친구 케이트는 ‘리즈’를, 대학원 동창 루카스는 ‘베스’를 추천한다. 케이트를 따라가 리즈라는 이름으로 공원에서 기타 연주를 감상하러 가는 것과 루카스를 따라가 베스라는 이름으로 주거환경 개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의 두 가지 선택 앞에서 엘리자베스의 여정이 시작된다.
리즈와 베스의 삶이 번갈아 가며 진행되지만, 조명과 소품을 이용해 두 사람이 구분될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엘리자베스라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바뀌는 대사톤과 인물의 분위기를 통해 하나의 선택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인물의 여정을 느낄 수 있다.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이프덴> 속 등장인물들은 화려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인물이기도 하고, 공연을 보는 우리들과 가장 닮아있는 인물들이 무대 위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에 그려지는 인물들의 삶에 더 공감할 수 있다.
리즈의 삶을 선택한 엘리자베스는 군의관 ‘조쉬’와 만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비록 전화를 놓쳐 뉴욕 도시 계획부 부국장 자리를 놓치게 되지만, 조쉬와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며 행복한 삶을 산다. 베스의 삶을 선택한 엘리자베스는 스티븐의 전화를 받아 도시 계획부의 부국장으로 일하게 된다.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녀가 도시 계획 전공을 하던 시절 구상했던 도시들을 그려나가며 커리어를 쌓는다. 하지만 어느 삶이든 행복한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병 면제권을 모두 써버린 조쉬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나갔다가 폭격을 맞아 죽는다. 베스는 국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주변 사람들이 떠나며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혼자 남은 엘리자베스가 부르는 넘버인 ‘You learn to live without(혼자가 되는 법)’은 그런 그녀의 심정을 담고 있다. 국장실에서 홀로 노래하던 베스의 시작으로 조쉬를 잃은 리즈의 시점으로 마무리되는 이 곡은 다른 선택을 하였음에도 ‘엘리자베스’라는 한 사람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장면 외에도 하나의 넘버에서 리즈와 베스의 시간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음악적인 부분들은 리즈와 베스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담고 있다. 선택에 따른 자신의 책임과 결과는 어떤 삶이든 따라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절망의 순간이 찾아온 엘리자베스가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조쉬가 파병을 떠나기 전에 남겨둔 노트 안에 담긴 조쉬의 사랑은 리즈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내 사랑 끝이 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어’라는 가사가 담긴 ‘Always starting over’을 부르며 상실을 극복하고 더욱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현재에 충실한 삶에 대해 느낄 수 있다. 항상 다른 출발선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리즈와 우리의 삶이 겹쳐지는 순간은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동시대성을 갖고 있는 이유가 된다. 출장으로 런던으로 떠나던 베스는 비행기 사고로 비상 착륙을 한다. 그 순간 사랑하는 친구들, 루카스와 케이트, 앤을 떠올리고, 그들을 만나러 간다. 서먹해졌던 루카스와 관계를 회복하고, 위기를 겪고 있는 동성애자 커플인 케이트와 앤에게 화해를 요구하며 사랑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혼자가 되어가고 있던 베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친구들과의 사랑이었다.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는 리즈와 베스를 통해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원동력임을 전달한다.
‘언제라도 어디라도 서로 사랑하자 우리
분노를 씻어내고 사랑하자 우리
늘 꿈꿔온 사랑은 아니라 해도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해’
- M20. Love While You Can
처음 시작보다 시간이 조금 흐른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리즈에게 다시 한 번 도시 계획부에서 일을 할 기회가 찾아오게 되고, 공원에서 베스에게 조쉬가 번호를 물어보며 다른 인생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고 돌아 다시 시작된 이들의 운명을 보며 어떤 선택이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기에 후회하기보다는 나아가며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작품에 두 번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비행기에 내린 엘리자베스가 조쉬에게 하는 독백이다. 가장 첫번째 장면에서 결말 이후의 시점의 베스가 조쉬에게 처음으로, 2막 ‘Always starting over’ 넘버 시작 전 리즈가 죽은 조쉬에게 두번째로 이 대사를 한다. 극을 보고 나오면서 첫번째 독백을 다시 떠올려보면 시간이 흘러 베스의 삶에서 다시 만난 조쉬도 결국 어떠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뮤지컬 <이프덴>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현재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리즈와 베스의 삶 중 어느 것을 선택하고 싶어?’는 이 작품의 어울리는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다 보면 뒤를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만약과 만약, 우연과 우연, 선택과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필연적인 결과들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선택한 순간 되돌릴 수 없으며, 선택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고, 그 과정들이 완벽할 수 없고, 때로는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 불안정 속에서 살고 있다. 더 나은 삶과 완벽함을 꿈꾸지만, 어쩌면 영원히 불안정한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 같다. 뮤지컬 <이프덴> 속 인물들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위기를 ‘진정한 사랑’으로 극복해나간다.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극복해나가는 인물들이 그 자체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또 다른 만약 앞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이들은 앞으로의 선택으로 또 다른 시련을 겪더라도 극복해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든든해진 상태로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안녕, 나야. 오늘 비행기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어. 만약, 내가 널 안 만났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그날 그 공원 기억나? 넌 세번째 파병을 마치고 돌아왔고, 네가 나한테 인사한 순간 너와 함께하는 평생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갔어. 알잖아. 내가 늘 만약이라는 상상에 푹 빠져 살았던거. 만약, 내가 그날 그 공원에 안 갔더라면, 또, 루카스나 케이트가 아니라 내가 커피를 사러 갔더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