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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격려가 가진 힘: 연극 <오펀스>

누군가 힘내라면서 어깨를 주물러 준 적 있어?

연극 <오펀스>

작은 격려가 가진 힘연극 <오펀스>

 



누군가 힘내라면서 어깨를 주물러 준 적 있어?’


 연극 <오펀스>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형 ‘트릿’과 그런 형으로부터 통제를 당하며 집에 갇혀있는 동생 ‘필립’이 사는 집에 시카고 갱스터 ‘해롤드’가 나타나며 시작된다. ‘Orphans’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고아들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되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없었던 트릿과 필립 형제에게 나타난 해롤드는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며 그들이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좀도둑으로 돈을 마련해 살고 있는 트릿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신발 끈도 제대로 묶지 못하는 필립에게 로퍼를 선물해 주며, 낡은 집을 깔끔하게 정돈해 준다. 매일 마요네즈와 참치를 먹으며 살았던 필립에게 다양한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술집에서 우연히 트릿을 만난 해롤드는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고아원에서 자라 세상에 내던져졌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닮은 트릿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전해주려 한다. 이 세 사람이 점차 가족이 되는 이 작품은 올해로 세번째 시즌을 맞으며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가족’의 의미가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다양한 의미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시대에 해롤드와 트릿, 필립이 만들어나가는 관계는 ‘격려’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에게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해준다.


연극 오펀스 공연 사진, 출처: (주)모티브히어로


 필립에게 유일한 보호자는 트릿 뿐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홀로 형제를 키우던 엄마를 누군가가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본 트릿은 외부의 위험한 것들로부터 필립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단시킨다. 글자를 배울 수 없도록 하고, 알러지를 핑계로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하며 말이다. 어떻게 동생에게 이렇게까지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한순간에 어른이 되어야 했던 트릿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이들에게 나타난 해롤드는 이들의 지도가 되어준다. 트릿은 이런 해롤드의 호의를 거부하고, 필립을 빼앗아갈까 봐 의심하지만, 누구보다도 그를 닮고 싶어 한다. 해롤드가 신었던 악어가죽 구두를 따라 신고, 해롤드와 똑같이 시가를 피우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누군가가 건네는 작은 호의조차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릿은 마지막까지 해롤드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롤드가 건넨 마지막 격려도 거부한 채 그를 떠나보낸다. 시카고에서 온 자신의 적으로부터 살해당한 해롤드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격려가 필요하다고 울부짖는 트릿의 모습은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느라 따뜻한 격려와 멀어진 관객 모두가 이입할 수 있는 장면이다. 트릿뿐만 아니라 관객들 역시 격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해롤드가 필립에게 처음 격려를 건네는 장면에 울컥했을 것이고, 죽은 해롤드를 보며 격려가 필요하다고 울부짖는 트릿을 보며 아픔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해롤드를 통해 형제의 삶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보면 연극 <온 더 비트>의 ‘아드리앙’과 비교가 되기도 한다. 사회의 어둠 속에서 함께해 줄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했던 아드리앙과 어른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 트릿과 필립 형제의 모습을 보며, ‘만약 아드리앙에게도 해롤드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오펀스 공연 사진, 출처: (주)모티브히어로



‘우리한테 필요한 건 엄마는 아니었을 거야. 넌 그냥 격려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렇지?’


필립은 나이에 비해 뒤떨어지는 언어 구사를 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집과 TV가 전부인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의 빛을 바라본다. 밤이 오면 자신이 살고 있는 카멕 스트리트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기적이라고 외치며, 가로등 하나하나에 담긴 태양의 작은 조각을 볼 줄 아는 아이이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빛을 발견하고,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필립의 여정은 이 형제의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해롤드가 바라본 트릿은 자신과 가장 닮은 아이였다면, 필립은 경험한 모든 것들을 전해주고, 베풀어주며 세상의 더 넓은 모습을 알려주고 싶은 아이였을 것이다. 해롤드가 떠난 이후의 형제의 삶은 어떨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삶이 드라마틱 하게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해롤드가 가르쳐준 것들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하루하루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았다. 형제의 비정상적인 생활 방식은 ‘고아’라는 결핍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형제 앞에 나타난 해롤드는 결핍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 꼭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며, 격려를 받고, 격려를 해줄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필립은 죽은 해롤드에게 첫 산책 때 따온 꽃들을 놓아주고, 피가 묻은 신발을 벗기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것인 로퍼를 신겨준다. 다시 이전에 신었던 캔버스화를 신은 필립에게 달려가 처음으로 신발 끈을 묶어주는 트릿을 보며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 혈연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관계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죽은 해롤드 앞에서 앵벌이 춤을 추는 것이다. 해롤드의 죽음을 추모하고 슬퍼하는 것보다 격려의 의미가 담긴 앵벌이 춤을 추며 그의 마지막 길을 격려해 준다.


필립한 번은 제가 형한테 말해줬어요. ‘저거좀 봐저거 완전 기적 아니야처음엔 해가 떠올라그리고 필라델피아 북부를 지나 사라져그리고 그 다음엔 카멕 스트리트 위로 가로등이 쭈욱 켜져.’

해롤드그럼 형은 뭐래?

필립: ‘기적은 무슨 빌어먹을 기적저건 제너럴 일렉트릭 전기 회사야.’

해롤드그런 말 믿지마저건 기적이야가로등 하나하나 안에 태양의 작은 조각이 들어있는 거야.


연극 <오펀스>의 가장 큰 매력은 젠더 프리 캐스팅이다.


 연극 <오펀스>의 가장 큰 매력은 젠더 프리 캐스팅이다. 남자 배우 3인 극인 원작과 달리,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재연 공연부터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공연을 해왔다. 성별을 넘어서 모두가 해롤드이고, 트릿이고, 필립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확대시킨 것이다. 해롤드가 죽기 전 트릿에게 건네는 ‘이리 와 딸아, 내가 네 어깨를 주물러줄게.’라는 대사는 여자 배우들이 그려내는 <오펀스>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이전까지는 ‘형’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들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남자인 척하며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해롤드의 ‘딸’이라는 호칭은 처음으로 그들을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고, 격려해 준다. 제4의 벽을 깨며 관객 모두를 대사 안에 포함시키는 이 대사는, 왜 힘든 설득의 과정 끝에 여성 배우들의 <오펀스>를 만들고자 했는지 한 번에 알게 해준다. 


 어떻게든 버티며 세상을 살아야 했던 형제가 해롤드를 통해 격려 받으며 성장하는 2주가 조금 넘는 시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2017년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필립이 가로등 불빛을 바라볼 때 켜지는 전구 조명이 주는 가슴 벅참, 죽은 해롤드 앞에서 앵벌이 춤을 추는 트릿과 필립을 볼 때의 슬픔,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 ‘흔들리는 영혼들이 전달하는 뜨거운 감동’이라는 <오펀스>의 부제를 다시 읽었을 때 느껴지는 뭉클함은 우리의 마음을 최선을 다해 격려해 준다.




글: 예술도서관 에디터 리니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3기 졸업생 리니는 지난 3년 동안 300회가 넘는 관극을 하며 예술의 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짧게는 90분, 길게는 약 180분 동안 무대 위에 펼쳐지는 세계가 위로가 되고, 용기와 힘을 주는 과정을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작품을 보고 친구가 해줬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이 작품이 흥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켰다면 성공한거다. 나를 변화시켜주었기에 이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알리고 싶고, 더 나아가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한 작품이라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창작자라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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