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보다 당당하게:영화<플로리다 프로젝트> 감상

무지개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지 않는다면


| 무지개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지 않는다면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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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 티없이 천진난만해야할 아이들은 난데없이 욕을 내뱉는다. 새로 나타난 사람의 차에 침을 뱉으며 행복한 놀거리라도 찾은 듯 맑게 웃는다. 현실이 쥐어준 나의 상식은 이들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라 말하고, 성희롱을 일삼고, 빈 집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등의 낯선 행동은 과하리만큼 아름다웠던 포스터를 지닌, 그저 한 편의 영화를 보고자 했던 내 인내심을 건드린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다. 이들은 절대 아이답지 않으며, 어른보다도 당당하며,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탈을 행한다.




모두가 로망을 가질 법한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 그 유명세를 타고 지어진 알록달록한 모텔에서 이야기가 벌어진다. 디즈니 월드의 인기가 다소 식고, 적당한 거처를 찾지 못한 빈민들이 장기 투숙을 하면서 하나의 마을이 이루어졌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의 중심, 자유로운 영혼의 엄마 헬리, 그의 딸 무니는 그저 하루가 가는 대로 저들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딸이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이고, 또 어떻게든 방세를 내기 위해 헬리는 불량 향수를 팔아가며 호객 행위를 하고, 결국엔 매춘까지 저지르게 된다. 아이에게 목욕을 시킨 채 말이다.


그녀의 행위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매직캐슬’, ‘퓨처랜드’라는 이름의 모텔 안에서 마법도, 미래도 찾을 수 없는 것은 과연 그들이 못난 탓일지, 이 또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텔에는 매니저 바비가 있다. 아이들에게 다가간 소아성애자를 쫓아내고, 때로는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고, 매춘에서 그치지 않고 남자의 소지품에서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훔쳐 되팔기까지한 헬리를 보호해준다. 어쩌면 바비의 시선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시선과도 같을 것이다. 부도덕으로 연명하는 그들에게 드는 동정심, 저 모녀의 위태로운 삶일지라도 이어가게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자꾸 그들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지옥을 맞이했을 때, 그저 타는 속으로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또한 마찬가지이다. 한껏 불편한 얼굴로 그저 모니터를 응시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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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치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을 관찰하는 듯 흘러간다. 그 옆의 지옥 같은 어른들의 현실이 커튼 뒤에 숨겨진다는 것 말고는, 제법 아름다운 시간의 연속이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고, 흐르지 못하게 또 활짝 웃는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고개를 들고 바라본 하늘이 제일 아름다운 그들의 세상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보랏빛 하늘엔 무지개가 펼쳐진다. 나눠먹을 아이스크림을 위해 구걸하러 가는 길엔 커다란 장난감 가게가 들어서있다.




그 순간이 나의 눈에 그들이 아이로 보인 첫 번째 순간이었다. 천진한 웃음도, 그 나이에만 나올 수 있는 비명소리도 아닌, 장난감 가게를 보고도 마치 아무것도 없다는 듯 지나치는 그들의 모습 말이다.


그제서야 느꼈다. 아이들은 한 번도 놀이터에서 놀지 않는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지도,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며 보채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세상에 주저 앉아 늘 보는 어른들처럼 웃고 떠드는 게 전부이다. 다른 세상을 본 적이 없으니, 아이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겐 연민의 시선도, 어른의 선택도 그저 오늘의 행복을 빼앗는 폭력으로 다가갈 것임을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극 중 쓰러진 나무를 보고 무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나무가 제일 좋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거든.’ 무니의 맑은 미소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채 무성하게 자라난 저 나무와 무니가 겹쳐보였던 건 무지개 위에 살아온 나의 시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근사하게 자라나고자 함에도 결국 하늘과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모습이 곧 무니와 아이들을 투영하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이 내 마음 속에 무겁게 남은 이유이며, 나의 시선이 주인공들을 향한 안쓰러움에서 내 주변으로 이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무니와 헬리가 떨어지기 전, 헬리는 평범한 호텔로 향해 무니에게 맘껏 음식을 먹인다. 마냥 신이 나버린 무니와 달리 헬리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하기만 하다. 저 나름대로 최선이었다고 생각한 방식이, 누구보다 소중한 제 딸에게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발목을 묶어놓은 코끼리는 결국 그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의 행복 그 바로 옆에서 빛나는 세계를 등지고 살게 될 앞으로가 절대 괜찮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제야 인정한 얼굴이었다.



아동국 직원들이 무니를 데려가려던 날, 무니는 가득 날이 선 채 도망쳐 친구 젠시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이 울 것 같으면 금세 알 수 있다던 아이는, 처음으로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무슨 일이냐는 친구의 말엔 아무 설명도 할 수 없다며 그렇게 한참을 운다. 아이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어서인지, 그저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인지 알 수는 없다.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된다. 같은 곳에 살고, 똑같이 행복하며, 서로를 세상이라 여기던 모녀의 미소가 결국엔 달라졌던 것처럼 모든 기억을 갖고, 스스로에게 다가온 규칙을 든 채로 그렇게 어른이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무니가 있을 것이다. 아이다움을 빼앗겼을지라도, 누군가의 가족으로, 누군가가 살아가야만 할 이유로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바비의 손길은 결국 그들의 세상에 닿지 못하였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이 최선인 아이들에게, 무지개 위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바라본 것이 제일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아이들을 향한 마음은 늘 어렵다. 때로는 꿈을 꾸며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보다 선심 쓰듯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그들에겐 닿을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저, 그들의 옆에 앉아있는 것. 그들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지 않을까.






제작/글: 예술도서관TA 서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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