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그림자

by 차희의 유희

'오늘따라 몸이 왜 이렇지? 후.. 어서 집에 가서 누워야겠어.'

이주는 바닥에서 발을 잡아 끄는 듯한 무게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에 더 깊이 웅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유일한 바람은 빨리 집에 가서 푹 쉬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날 선 기운이 뺨을 스쳐갔다. 바람 소리일까? 아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울림.

'뭐야, 이 느낌은?'

이주는 불쾌한 기운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었지만 신경을 끊임없이 긁어댔다. 결국 발걸음을 멈춰 기운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치자,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울렸다.

몸이 움츠러드는 것은 본능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날카로운 소리와 어두운 기운은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보는 기이한 장면을 마주했다.


어둠 속,

몇몇 사람들이 얼굴을 가린 채 영혼과 대치하고 있었고, 영혼은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과 함께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 광경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요동치듯 울렁였다.

"월영."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칼은 살아 있는 듯 강렬한 존재감으로 주변의 공기마저 차갑게 얼어붙게 했다.

서늘한 푸른빛과 붉은 홍염이 춤을 추듯 타올랐으며, 검무를 추는 듯 우아한 곡선을 그렸다.

도원은 칼끝을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반귀령의 기운은 예상보다 강했고, 그의 팀원들은 이미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기운이 보통이 아니네요. 이 정도면 최소 몇십 년은 응어리가 맺혀 있었던 것 같아요."

한상현이 은으로 쓴 부적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귀령 수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홍란 또한 방어막을 유지하며 상현의 말에 동조했다. 그녀의 이름을 닮은 듯한 붉게 일렁이는 방어막은 반귀령의 기운이 닿을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네 놈들이 뭘 안다고!"

반귀령은 몸을 뒤틀며 악에 받친 소리로 외쳤다.

"내 억울함을 감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다 죽여버릴 거야!"

검붉은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며 소용돌이쳤다. 그것의 기운은 땅과 바람을 일그러뜨리며 공간을 흔들었다.

"상현, 저쪽으로 몰아서 퇴로를 막아. 란, 방어막을 더 강화해."

도원이 익숙한 듯 자세를 잡으며 짧게 말했다. 칼끝은 반귀령을 향해 빛처럼 번뜩였다.

그가 움직이자 반귀령 또한 도원을 향해 거대한 검붉은 기운을 뻗었다.

"어딜!"

홍란이 방어막을 펼치며 도원을 지켰다.

도원은 상현과 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순간, 다른 이의 기척이 느껴졌다.

‘귀찮게 됐네’

반귀령이 다른 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전에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매뉴얼에 따라 목격자 또한 최면을 거는 것도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다.


이주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영혼과 대치중인 여러 무리라니, 딱 오해하기 좋은 장면이 아닌가. 하지만 영혼에서 나오는 어두운 기운은 그녀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벗어나야 한다.’

몸에 돋아난 불쾌함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미 저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지만 본인이 관여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반귀령이 공기가 달라진 틈을 놓칠 리 없었다. 바람을 헤집어 뻗은 손길은 멀찍이 서 있던 이주를 단번에 휘감았다. 그녀의 목을 움켜쥔 건 빛보다 빠른 찰나였다.

"큭!"

차가운 칼날 같은 손길이 목을 조여왔다. 떨어진 안경이 발밑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원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으나 곧 차가운 표정으로 칼끝을 겨누었다. 그것을 처리하는 게 최선이었다.

"반귀령, 그런다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반귀령에게 경고하면서도, 시선은 이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반귀령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손아귀의 힘을 더 강하게 주어 이주의 숨을 조였다.

"복수를 위해 힘을 키운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그놈이 나를 좀먹은 시간만큼 똑같이 해주고 내 발로 갈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반귀령의 몇 마디 말로도 사연이 짐작되었다.

과연 억울함일지는 단정 지을 수 없으나 그 고통만은 분노와 절망으로 뒤섞여 있었다.

검붉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듯 그의 몸을 감싸고, 이주의 목을 조르는 손에는 서서히 더 큰 힘이 실렸다.

그녀는 숨이 막혀오는 와중에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온몸의 감각이 발끝부터 무뎌졌다.

도원은 칼끝을 여전히 반귀령을 향한 채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단호했지만, 입안이 마르듯 초조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오면 이 여자도 죽여버릴 거야!"

반귀령이 기운을 더욱 거칠게 뿜어져 내던 순간 갑자기 데이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며 손을 움찔했다. 뭔가 예상치 못한 힘에 닿은 것처럼. 그러나 이내 다시 손아귀에 힘을 주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이다.’

이주는 자신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작은 제등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진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운향의 빛이여, 천지를 비추고 어둠을 물리쳐 영혼을 구원하라. 달빛 속에서 춤추는 그림자여 월영과 무영의 이름 아래 어둠을 가르리.'

제등 안에서 퍼져 나오는 금빛이 방울소리와 함께 공기를 갈랐다. 그것은 반귀령을 이주의 몸에서 강하게 밀쳐냈다. 도원도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몸을 날려 칼을 단숨에 휘둘렀다. 강렬한 빛을 품은 칼끝이 반귀령의 몸을 가르자 곧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반귀령은 고통스러운 비명은 마지막 절규였다.


주변의 공기는 계절에 걸맞게 차갑게 가라앉았다. 발에 밟혀 엉망이 된 안경을 도로 주워 써 봤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떨리는 다리와 손을 의식하며 힘을 주었다. 흐릿한 눈과는 다르게 온몸에 돋아 있는 감각이 너무나 선명했다.

도원이 이주에게 다가왔다. 그의 흔들린 손끝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은 감정을 드러낼 순간이 아니었다. 아까 보인 이주의 능력에 최면을 걸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돌아서며 말했다.

"끼어들지 마."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이주는 충격으로 얼어붙은 채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

"..... 그런데... 왜 반말이야?"

혼잣말처럼 새어 나온 목소리는 바람 속에 묻혀 그에게 닿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새 멀찍이 돌아간 도원은 팀원들에게 간단히 지시를 내렸다.

"상현, 현장 정리 부탁해. 란은 주변 흔적을 지워줘."

도원은 검을 거두며 조용히 운영을 불렀다..

"운영아, 임이주에 대해서 알아봐, 그의 집안까지 조사해도 좋아"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늦은 오후가 돼서야 이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벽의 일은 꿈처럼 아득했지만, 몸에 남은 뻐근함이 그것이 현실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거실로 나가자,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만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작은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김과 은은한 향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그 따뜻한 공기가 그녀의 늘어진 몸을 한층 더 노곤하게 만들었다.

"할머니~ 몸이 막 부서질 것 같아."

이주는 소파에 주저앉으며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책에서 눈을 떼고 이주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약국에서 많이 힘들었니?"

"아니, 그게…"

이주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할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자연스레 손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새벽에 이상한 일을 봤어."

그녀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

"무슨 일인데?"

"악령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사람들이랑 싸우고 있었어, 그리고 그중 한 남자가…"

이주는 말을 멈췄다. 그 순간의 낯선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손에서 칼을 만들어내는 걸 봤어. 그냥 칼이 아니라, 기운으로 만들어지는 느낌이었거든? 완전히 이상했어."

할머니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얼굴에 엷은 긴장감이 스쳤다.

"그 악령… 너를 해치려고 했니?"

"응. 목을 잡혀서 정말 위험했어. 그래서 제등을 썼지."

이주가 담담히 말하자 할머니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제등 덕분에 살았어. 그게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안심시키듯 웃어 보였다.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잘했어. 제등은 그런 순간을 위해 있는 거니까. 정말 다행이구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주는 문득 떠오른 이름을 꺼냈다.

"근데 할머니, 그 사람들이 반귀령이라고 말하던데, 혹시 알아?"

"반귀령이라…"

할머니가 잠시 생각에 잠기며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멀리 보냈다.

"...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단다."

"흑월가라는 집안에서 쓰던 이름이지."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악귀로 변하기 전, 고통에 집착하는 존재...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한과 욕망, 집착을 품고 있는 영혼을 반귀령이라 불렀단다. 흑월가는 그런 존재를 처리하며 이승과 저승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했지."

"흑월가?"

낯선 이름에 이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옛날에는 우리 집안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들었어. 조선시대에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돕기도 했고... 하지만 우리 선조와 흑월가 선조 사이에 일이 생겼지. 그 일 이후로 흑월가는 모습을 감췄단다. 지금으로 치면, 200년도 더 된 일이야."

"그럼 새벽에 본 그 사람들이 흑월가 사람이었겠네?"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구나. 일을 그만둔 건 아니었던 모양이야."

이주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단한 집안이네..."

새벽의 일이 머릿속에 다시 선명해졌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졌던 낯선 감각들.

할머니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주야,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악귀는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네 몸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단다."

"알았어, 할머니."

이주는 무심히 대답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 남자의 차갑던 눈빛과 단호한 태도가 자꾸만 떠올랐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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