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왜 안 씻고 누워 있었나

내 머릿속 심포지엄

by 엔트로피



프롤로그


씻고 자야 했다. 내일 출근할 거고, 지금 안 씻으면 피곤할 걸 안다.
그런데도 나는 소파에 누워 발을 까딱까딱 거리며 “몰라~”를 반복했다.
이상하게, 안 씻으니까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춤추는 기분.
씻으면 이 모든 게 멈출 것 같았다.
오늘이 끝나는 게 싫었다.




심포지엄: 내 뇌 속 회의


회의 라운드 1

자율:
“이건 내 선택이다. 난 ‘해야 한다’는 강박을 부수고 싶어.
씻는 순간, 난 의무에 굴복한 것 같잖아.”


안전:
“강박? 아니, 이건 생존이야.
내일 피곤하면 네 자유도 끝이야. 리스크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루틴:
“프로토콜 알람: ‘샤워 → 취침 → 회복’.
너 지금 이걸 깨는 순간, 내 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


충동:
“ㅋㅋㅋ 이게 꿀잼이지.
씻으면 오늘이 끝나잖아? 난 끝내기 싫어.
이 상태, 아이디어 뿜뿜—이게 스릴이다.”


감정:
“…나는 그냥 오늘이 끝나는 게 싫어.
씻는 건 하루의 종결 의식이야.
그걸 미루는 건, 내일을 조금 더 늦추는 거다.”


회의 라운드 2

안전 :
“충동이 너 스릴 찾는다고? 웃기지 마. 내일 아침 네 존재감은 제로야.
네가 만든 재미는 피곤에 덮여 사라진다.”


충동:
“…그래. 그게 무섭다. 내일이 오면 나는 없으니까, 지금 더 버티는 거야.”


자율:
“나도 고백할게.
난 자유를 외쳤지만, 사실 움직이는 게 무서워.
움직이는 순간, 내가 ‘의무’에 굴복한 것 같거든.
난 지고 싶지 않아.”


감정:
“…씻는 게 문제가 아니었네.
난 오늘이 끝나는 게 싫었던 거야.
씻기 = 내일로 넘어가는 다리.
나는 그 다리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회의 라운드 3 : 핵심 메시지


“결론은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다—씻는 문제는 ‘종결’을 받아들이는 용기였다.
그리고… 이 싸움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안전하다.”


합의 상태:


부분 합의 (이해는 생김, 행동은 보류)


합의 이유 & 변화:


씻기 거부는 의무 거부가 아니라 시간을 붙잡는 시도였다.
오늘 깨달음: 나는 하루가 끝나는 걸 두려워했다.



전문가 코멘트


심리학자:
“이 패턴은 ADHD 실행 기능 문제와 ‘종결 회피’가 결합된 사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불안이 창작 에너지로 전환되며 아이디어 폭주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정신과 의사:
“단순 게으름이 아닙니다.
종결 불안은 내일과 마주하는 부담에서 기인하며, 반복되면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을 초래합니다.”


철학자:
“샤워는 단순한 위생 행위가 아니라 ‘하루라는 소우주’를 닫는 의식입니다.
이를 미루는 건 유한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자유를 선언하는 역설입니다.”


오늘의 문장:


“나는 씻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나는 하루가 끝나는 게 싫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