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심포지엄
프롤로그:
설거지를 하다 말고 발차기를 하고,
학습지를 풀다 말고 청소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하다 말고 빨래를 개고,
나는 분명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정신없고… 계속 일하고… 근데도 미완성이지?
라운드 1: 자아 선언
자율:
“쪼개서 한다는 건 작업의 과부하를 피하는 전략이다.
집중력의 지속 시간이 짧을수록,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게 효율적이다.
일괄처리하는게 이상적일 수 있지만, 나하고는 안맞는다.
나의 처리 방식은 즉흥적이지만, 그 안에 최적화된 순환이 있다.
즉, 나는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다중 전환하는거다.”
안전:
“나는 한 번에 하려다가 실패한 기억이 너무 많다.
몰아서 하다 보면 꼭 무리하거나, 중간에 무너져서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그래서 분산시킨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누는 거다.
쪼개면 부담도 줄고, 실패 확률도 줄어드니까.
‘조금이라도 했으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킬 수 있잖아.”
루틴:
“나는 규칙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
단지 그 규칙이 ‘내 방식’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하루에 딱 학습지 한 장, 설거지 조금, 빨래 한두 장.
이건 나만의 생활 흐름이고, 매일 조금씩 실행되는 귀여운 루틴이다.
이 방식은 나를 망치지 않고, 유지시켜주는 최소의 노력이다.”
충동:
“솔직히 말해봐. 나 지금 지겨워서 다른 거 한 거잖아.
그거 하다가 또 저거 보이고, 이거 하다가 또 저게 눈에 띄고…
내 삶은 그냥 지금 눈에 띈 것 부터 처리하는거야
딴 거 다 필요 없고, 난 재미 없으면 손이 안 움직여.
그래서 돌아다니는 거임. 그냥 손이 심심하면 걔가 먼저 행동하니까.”
감정:
“사실 나도 지쳐.
계속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할 일에서 저 할 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나는 뭘 끝내는 사람이라기보단, 계속 시작만 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나만 이러나?’ 하는 생각도 자주 들어.
근데 멈추면 그건 그거대로 더 짜증나, 그냥 움직이는 거야.”
라운드 2: 내면 난투전
충동:
“야 그만 좀 분석해. 내가 한 거 설거지 ⅓, 학습지 1장, 운동 4분, 끝.
근데 왜 자꾸 나를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냐고.
나 지금 청소기 돌리다 거북이 집 보이고 거기서 빨대 피해서 설거지함.
이게 뭐냐? 그냥 눈앞에 보이면 하는 즉흥적인 인간이잖아.”
루틴:
“그래도 넌 움직였잖아. 그게 중요해.
시작이 엉망이어도 유지가 되면 그건 루틴이야.
너는 오늘도 빨래했고, 학습지도 했고, 니킥도 했어.
그 모든 건 네가 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 거라고.
네가 싫어하는 건 혼란이지. 멈춤은 더 싫어하잖아.”
자율:
“동의한다. 멈추지 않는다는 건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뇌의 집중 자원이 한 작업에 오래 머물 수 없다면,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게 오히려 총 효율성을 높인다.
이건 장애물이 아니라 전략이다.
장기 프로젝트도 결국 하루 단위 루틴의 총합이다.”
안전:
“다 좋다. 근데 왜 항상 불안하냐.
‘나 이거 안 끝낸 거 같은데’ 느낌으로 하루가 끝나잖아.
침대 누우면 ‘그거 다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계속 나고.
그래서 문제다. 루틴이 아니라 불안 기반의 임시조치 연속처럼 느껴져.
내가 조절하는 게 아니라, 불안이 날 조절하는 느낌이 든다고.”
감정:
“맞아. 난 내가 뭔가 하고도 ‘했구나’ 싶은 순간이 잘 없어.
계속 도망치듯 움직이고, 애매하게 마무리하고, 자꾸 찝찝해.
그래서 글로라도 정리해두는 거야. 그래야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움직이는 인간’으로 보이기보단,
‘즉흥을 받아드린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어.”
[오브서버 FACT CHECK]
실제 ADHD인들은 대체로 “몰아서 하기”보다는
“작게 나눠서, 흥미 기반으로, 조금씩 반복”하는 방식이 더 지속 가능하다고 보고됨.
단, 완성감 결여로 인해 자존감 손상이 올 수 있으므로,
“작은 성취를 눈에 보이게 기록하는 구조”가 보완책으로 추천된다.
라운드 3: 결론을 향해
자율:
“따라서 ‘작게 나눠 돌아가며 처리한다’는 건 비효율이 아니라 흐름이다.
집중의 밀도보다 재미, 만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안전:
“단, 이 시스템이 불안을 강화하지 않으려면
각 작업의 ‘종료’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감정:
“그래도 나 자신이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미완성처럼 보여도, 매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충동:
“그래서 결론은? 다음 할 일 뭐야? 빨래 개?
아니면 그냥 눕자. 나는 진짜 잘했어.”
루틴:
“눕기 전에 냉장고 닫았는지 확인하고.
그게 오늘의 마지막 루틴이야.”
나는 일처리를 쪼개는 게 싫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무능하다고 느껴지는 게 싫었다.
전문가 코멘트
심리학자:
“작게 나눠 하는 행동은 회피가 아니라 자기효능감 확보의 방식일 수 있다.
주의력 결핍보다 감정 조절과 불안이 실질적 원인인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
“ADHD는 몰입보단 전환 기반으로 작동하며,
그에 맞는 루틴 설계는 충분히 생산성을 보장할 수 있다.
단, 자책 루프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인식이 꼭 병행돼야 한다.”
철학자:
“이것은 자유의 문제다.
‘내가 선택해서 움직이는가, 불안에 밀려 움직이는가.’
그 경계에서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매우 철학적이다.”
미니선풍기 없으면 밖에 나갈수없음 너무더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