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탁에서 얼마나 멍하니 앉아있었을까? 해가 떨어지고 배경이 음울하게 바뀌고서야 저녁이 된 걸 알았다. 주방조명을 켜고 얼른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식빵에 올리브오일과 다진 마늘을 발라서 앞뒤로 잘 구워서 옆으로 치워두고, 토마토는 잘게 잘라두었다. 냄비에 올리브오일을 다시 두르고 잘게 다진 양파와 마늘, 베란다에서 따온 바질을 넣고 볶은 후에 아까 잘게 잘라둔 토마토를 넣고 볶았다. 구워놓은 빵을 넣고 모차렐라치즈와 바질 이파리를 올렸다. 종현이 오늘도 학원을 마치고 왔다. 원래 같으면 아이 혼자 먹이고 나는 남편과 먹을 텐데 오늘은 아들과 같이 먹었다.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치를 보는 모습에 괜히 미안했다. 사실은 오늘 교무실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종현이는 화가 난 듯 보였다. 버럭 소리 지를 듯하다가 삼키고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화났니?
"엄마, 사실은요..."
아들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끔찍했다. 교사가 아들을 성추행하다니. 나는 당장 이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종현의 의견은 달랐다.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증거가 없어서 그래요. 아들은 울었다. 왜 말을 안 했어.
"내가 남자라서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줄 거래."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일을 버르집어야 했다. 나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유난히 늦어지는 퇴근에 괜히 베란다로 나가서 애꿎은 제라늄 화분을 순 따기 했다. 쇠 냄새가 손에서 났다. 옆에 봉선화도 꽃망울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봉선화는 사실 심지 않았는데 삼 년 전에 씨를 뿌린 것이 자라더니 씨주머니가 팍 하고 터져서 화분 여기저기 번져서는 매년마다 꽃을 보고 있다. 베란다란, 가드닝이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잠시 덕분에 진정이 되었다.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살짝 어지러워질 무렵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저녁을 먼저 차려주었고, 그가 식사를 마칠 때쯤에 나는 차를 준비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이 교사한테 성추행을 당한 것 같아. 잘생겼다면서 여기저기 만지고 껴안더래, 엉덩이도 가끔 두드리고 그러더래. 제일 소름 돋는 건 가끔 아들보고 자기야라고 부른 적도 있대. 어쩌면 좋지?"
남편은 너무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그는 머리가 아파 보이는 듯했다. 그가 생각하는 동안 나도 생각을 했다. 아까 보였던 그 이상한 행동은 그 여자의 질투였구나.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