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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Sep 13. 2024

일기는 일기장에 #12



나는 한동안 서연의 일기장을 볼 시간이 없었다. 아들의 사건 이후로 돈을 벌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니던 회사에 재입사를 했다. 하루종일 서류만 달달 외웠다. 알고 있던 것들이 섞여서 더 혼란스러웠다. 안경을 오래 쓰니 두통이 있다. 집에서 엎드려서 책 하루종일 보다가 오래 앉아있으니 몸이 간지럽게 쑤셨다. 아침에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체크시트를 만들었다. 눈을 뜨면 먼저 빨래를 돌리고, 아침식사를 만든다. 저녁에 먹을 샐러드는 새벽에 배송이 온다. 상하지 않게 얼른 챙겨 들어와서 정리해 둔다. 아이 어린이집 가방을 챙긴다. 어제는 어린이집에서 호정이 친구 어머니가 팔찌를 만들어 주셨다. 꽃모양 비즈가 반짝거리는 것이었다. 손재주가 없어 답례품이 고민이다. 마음이 전해질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힙시트에 출퇴근길은 왕복 2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두 시간은 버스 안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아직 돌 안된 아기를 안은 엄마가 버스에 오르자 차량의 전원이 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내 하루의 연료가 되었다.


두 번째 출근한 날. 같이 교육을 받던 동생이 포기하고 나갔다. 조금 아쉽다. 아는 만큼 더 챙겨줬어야 했나 싶다. 오지랖일까 망설이다가 놓치는 게 있다. 어제는 버스를 놓쳐서 멀리 돌아가는 걸 타느라 퇴근길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무사히 집 앞에 내리는 버스를 타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있다. 그곳이 거대한 봉분처럼 보였다. 회사 일 이야기는 쓰지 않기로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밥 먹다가 이야기를 꺼낸다. 언니는 목에 주름 생기는 게 싫어서 선크림을 목에 꼬박꼬박 발랐잖아요. 예전에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도 기억 속에만 남겨 두었었다. 그래서 10년 전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놀란다. “너는 어떻게 그런 걸 기억하니?” 그래서 저도 목에 선크림 바르거든요. 언니 덕분이에요. 무덤에 묻어뒀던 인사를 꺼내어 건넨다. 커피를 마셔도 어차피 졸리다면 내일부터는 끊어야겠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담당자님이나 상사분께 옮기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너무 연속으로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녹차와 둥굴레차도 번갈아 마시고 물도 많이 마신 것 같다. 자료를 보면 졸리지만 졸려도 봐야 한다. 열심히 해서 교육은 단축되었지만 사번이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출입카드는 다음 주쯤에나 나올 것 같다. 출입카드가 없으니 식사 후에 몸이 찌뿌둥해도 산책을 할 수 없다. 오래 앉아 있어서 몸이 쑤시길래 일부러 위층 화장실에 간다고 했더니 담당자님이 임시 출입카드를 주신다고 하셨다. 내일은 산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퇴근 후에 친구에게 받은 쿠폰으로 매장에 주문을 하고 찾으러 가는 길에 주문한 지 5분 만에 치킨이 조리가 완료되었다고 카톡이 왔다. 그리고 바로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1234로 보내야 하는데 내 번호가 1324라서 잘못 보냈다고 너무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선생님 맛있게 해 주세요. 사장님이 두 배는 맛있게 해 드린다고 하셨다.


시어머니가 감사하게도 아들의 식사를 챙겨주셨고, 남편도 집에만 있는 게 싫어진 내가 일하러 나간다니 응원해 주었다. 이렇게 바쁘게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그것만으로도 서연이는 내게 잊혀갔다. 그로 인해서 생활이 다시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너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는 것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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