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거워 그 때문에 주먹을 펴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너는 슬슬 회사에 지쳐서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너의 세계는 어머니라는 거인이 지배하고 있던 작고 비좁은 세계였다. 어머니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이런 말을 네 앞에서 꺼낼 수 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때 떠났던 여행으로 우리는 현실을 잊었다.
아무튼 다음날이 되고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은 뒤, 재래시장을 가보았다. 한국과는 달리 젊은 상인들이 주류라는 점에서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시장이 활기찼다. 구경이 끝나고 고료가쿠 공원길을 산책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별모양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별 안에 있으니 별인 줄 모르고 산책을 했다. 오오누마 공원으로 이동해서 호수를 구경했다. 곤부관을 들러 다시마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나는 그 괴상한 맛에 인상을 찌푸렸고, 너는 "생각보다 맛있는데?" 라며 내 것까지 먹어치웠다.
우리는 점심으로 하코다테에서 유명하다는 오징어밥을 먹으러 갔다. 원래 홋카이도가 가리비가 유명한지 오징어밥, 가리비, 생선조림, 연어, 절임반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도야호수에서 작은 유람선을 타고 우수산, 쇼와신산의 경치를 보았다. 1시간 정도 구경을 한 뒤 쇼와신산 활화산을 보러 전망대에 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눈이 사람의 허리까지 쌓여있었고, 지붕 위에 작은 인형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집주인인 걸까?"
"글쎄, 다들 눈을 잘 치우네."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분이 머뭇거리더니 "홋카이도에는 눈을 치우는 직업이 있어요." 하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놀라서 너무 신기하다고 감탄을 하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친절한 나라였다. 30분 정도 차로 달려서 기타유자와 명수정으로 갔다. 저녁식사로 또 게요리가 나와서 너는 내가 발라준 살을 조금 먹고, 계란찜과 함께 식사를 했다. 빡빡한 일정에도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와서 참 기특했다.
마지막날은 너와 먹었던 라벤더 아이스크림, 초밥, 시로이코이비토, 그리고 그 아름답던 오르골당. 오르골당.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울려 퍼지던. 나는 거기서 사 왔던 거실 티브이선반 위에서 장식되어 있는 먼지 쌓인 오르골을 꺼내 들었다. 축음기모양 오르골에서 미야자키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왠지 슬퍼져서 오르골을 하염없이 감고 또 감았다.
아들이 일찍 들어왔다. 오늘은 학원을 가고 싶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해주어 기뻤다. 나는 선생님들께 문자를 해서 오늘은 아이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들은 말했다.
"엄마 경찰 안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여러 차례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엄마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고민을 하다 보니 당사자가 싫다는데 이 일을 헤집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어야 하나 싶었다. 정의감에 살짝 취했던 거 같았다.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가기엔 억울했다. 아이에게 담임에게라도 말하자고 설득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그 여자에게 주의를 주는 걸로. 우리는 그렇게 타협을 봤고, 남편에게도 말했다. 남편 또한 나를 먼저 설득하려 했지만 나도 완강하게 거부했다.
세상일,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어두운 상념에 잠겨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같아서 걷고 또 걸었다. 공원 초입에 계수나무를 보며 아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계수나무를 하트나무라 불렀던 아이가 저렇게 자랐다. 나는 아이에게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 슬퍼졌다. 가슴이 온통 슬픔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