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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27. 2024

일기는 일기장에 #10




너는 외국이 처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하코다테공항으로 비행기는 출발했다. 2시간 20분 정도 걸렸었던 기억이 난다. 점심으로 호타테 돌솥밥과 임연수어 구이, 연어회, 두부가 나왔다. 모토마치 산책코스를 돌았다. 하치만자카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그 아름답던 광경은 2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하코다테의 아리스토 러시아 정교회의 지붕은 민트색이랄지 회녹색이랄지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지붕을 가진 비잔틴 양식의 건물이었다. 너는 교회 앞에서 내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주었다. 촌스럽지만 브이를 하고 찍었던 사진이 아직도 남았다. 너는 보라색 머리를 하고는 가죽재킷에 워커를 신고 마치 일본 현지인처럼 하고서는 첫 해외여행에 긴장하며, 설레어하며 돌아다녔다. 보이는 건 뭐든 찍었다.


"언니, 신발에 눈이 계속 들어와."
"그러니까 멋 부리지 말고 어그 신으랬잖아."


너는 빨개진 코를 하고 웃었다. 눈길에 휘청하며 균형을 잡으려 네 팔을 잡는데 가죽재킷의 차갑던 촉감이 생각난다.


우리는 이동해서 구 하코다테 공회당으로 향했다. 연청보라색 건물에 금장 테두리가 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너도 여기만큼은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어 버리고는 눈으로 구경했다. 하얗고 깊게 쌓인 눈이 쌀가루를 치대는 것처럼 뽀드드둑 소리가 났다.


"발 시려."
"자업자득."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서로가 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트라피스치누 수도원을 돌아보고, 하코다테 로프웨이를 타고 야경을 보았다. 너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얇은 다리를 덜덜 떨면서 내 팔을 붙들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내 분홍색 후드외투에 손 땀자국이 날 정도였다. 로프웨이에서 내린 우리는 하코다테 베이 에리어를 차창 밖으로 대충 훑어보고 숙소로 향했다. 하코다테 시내랑 가까운 유노카와 온천호텔에서 우리는 묵었다. 다다미형 호텔이라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벌러덩 누워 피로를 달랬다. 저녁은 카이세키 요리를 먹었다. 해산물을 잘 못 먹는 너는 게를 내게 다 건네주었다.


배가 불러진 우리는 객실의 가운을 챙겨 입고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은 야외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가림막 너머 남자들 목소리가 들려와서 우리는 너무 신기해했다.


"언니, 만화처럼 원숭이도 오려나?!"
"그럼 나는 빽빽 소리 지를 거야."


야외온천을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연애이야기, 돈, 내일 뭐 할지,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깨가 차가웠다.


"미쳤다. 언니! 눈 내려. 예쁘다."


나는 고개를 반쯤 젖혀 온천물에 머리를 담그고 하늘을 봤다. 하늘에 별이 보이고 눈이 내리니 별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보였다. 온천이 끝나니 노곤노곤해져서 일찍 자고 싶었는데 서연이가 언니는 왜 로션을 안 바르냐며 타박을 해댔다. 나는 안 발라. 찜찜해. 그리고 잠들만하면, 언니, 언니, 결국 내게 혼나고서야 너는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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