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출근 전에 이력서를 마구 집어넣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한 푼이라도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서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이상하게 아랫배가 당겼다. 그리고 임신했을 때처럼 무언가 꿈틀대는 환감각이 느껴졌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날 불려두었던 병아리콩을 월계수잎을 넣고 삶았다. 베란다에서 로즈메리를 따와서 마늘과 함께 올리브오일을 두른 팬에 볶았다. 삶은 콩과 토마토소스를 넣고 끓였다. 혼자 있을 때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데, 불 앞에 있으니 어지러울 정도였다. 일기장을 꺼내어볼까? 고민하다가 마음을 접었다가, 이거 다 먹고. 그래. 꺼내보자. 싶어서 천천히 수프를 음미했다. 냉장실에 넣어두었던 좋아하는 약과도 꺼내먹었다. 내 방 한가운데 놓인 리빙박스 뚜껑을 열고 일기장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06년 이후에 뭘 읽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기장을 만지는 것이 이제 괴롭기까지 하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모르고 덥석 받아버린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제부가 태울 때 둘걸 그랬나 보다.
작은 수첩형 메모노트가 있었다. 거기엔 2006년이라고 적혀있었다. 06년 일기가 끝나지 않았구나. 바나나 그림이 그려진 그 노트를 펼쳐보니 빼곡한 일정들이 적혀있었다. 너는 LCD 공장을 다녔다. 잔업을 했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수영을 다녔다. 친한 언니가 생겨서 그 언니의 차를 타고 호텔로 가서. 벌이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네 이름이 민서라고 적혀있다. 민서. 민서. 나는 너의 이름을 곱씹다가 다음페이지로 넘겼다.
너는 방송댄스를 배웠다. 친한 언니들과 형부와 함께 무주리조트를 처음 갔다. 그리고 너는 몸살이 났었지. 기억난다. 친한 언니들과 12월 추울 때 생일파티를 했다. 06년의 너의 일기장에 집의 빚이 삼천만 원이라고 적혀있는데, 이 빚이 알고 보니 일부일 뿐이었노라고 내게 절망적으로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월급 140만 원을 받아서 대출금 62만 원을 갚고, 어머니께 20만 원을 드리고, 관리비를 내고, 쪼개고 쪼갠 돈으로도 적금을 했었다 너는, 친구들과 보드복을 새로 장만했다고 기쁘다고 적혀있다. 대출이 4천만 원이라고 너희 어머니가 이야기하자 충격이라고 적혀있다.
너는 07년 1월에 친구를 따라 익산을 다녀왔다. 어울려 지내는 언니 생일파티를 하이원에 가서 하고 왔다. DSLR 카메라를 샀다. 사내연애를 잠깐 했는데, 그분이 너에게 연락을 한 달간 하지 않아서 이별을 고했다고 되어있다. 상대방은 뜬금없이 네게 프러포즈를 했고, 너는 목걸이를 돌려주며 거절했다. 당시에 회사를 다닐 때 정말 반짝반짝 아름답던 언니가 있다고 적혀있다. 그 사람을 보고 엄청나게 부러워한 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는 나와 떠났던 온천여행이 내용에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