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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l 01. 2023

학습된 감정에도 진심이 담길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아스퍼거증후군이라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똘이가 아스퍼거 증후군일 가능성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똘이를 도와야 할까? 지금의 치료 방식을 유지하되, '감정'을 가르치는 데 좀 더 신경을 쓰고 '공감하는 연습'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공감능력이 연습을 통해 길러지는 게 맞는지는 이견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공감 또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똘이는 우선, 무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감정에 대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로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마저도 공부해야 하다니. 영어도 아니고 수학도 아니고 감정을 가르친다라....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나. 


우선 똘이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학습’ 해야 한다. 공감이 안 되면 ‘학습’을 해서라도 타인의 감정을 읽고 이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세상에 100개의 감정이 있다면, 그 100개를 일일이 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자. 똘이는 상대방의 행동이 그 100개 중 어떤 감정으로 인해 나타난 행동인지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100개의 감정이 있다면, 그 감정이 발생하는 상황은 100의 제곱만큼도 넘게 있을 것이다. 똘이에게는 최대한 많은 표본이 필요하다. 곤충채집을 하듯 많은 감정과 상황을 채집해야 한다.


  똘이는 마치 사이다를 누르면 사이다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특정 말과 행동만을 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말과 행동을 하려면 그만큼 많은 감정과 대처행동을 배워 두어야 하는 것이다. 똘이가 체득한 표본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대의 행동에 알맞게 반응하기가 쉬울 것이고 표본이 너무 적거나 거의 없다면 핑퐁 대화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서 나오는 미묘한 ‘뉘앙스’를 읽지를 못한다. 학습의 결과가 타인의 뉘앙스를 읽는 데 까지 확장되진 못하더라도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 의사소통은 가능케 해 줄 것이다. 최종적으론, 똘이의 자판기에 '보기'가 수백, 수천 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똘이가 언제라도 쉽게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똘이가 아스퍼거 장애라는 것을 가정했을 때, 똘이가 지금 당장 배워야 할 것을 정리해 본다. 


1. 똘이는 감정의 종류에 대해 배워야 한다.


감정카드를 보며 감정의 이름을 함께 공부하고, 치료사 선생님께도 협조를 요청한다. 똘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인지시켜준다. 똘이가 특정 행동을 했을 때 엄마의 감정이 어떤지를 설명해 준다.


2. 똘이는 자신의 감정을 세분화하여 인식해야 한다.

 


지금 똘이에겐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만 있다. 행복함, 즐거움, 설렘, 뿌듯함 등이 모두 "좋아!"이고, 화남, 슬픔, 억울함, 서운함 등이 모두 "속상해."이다. 

자신의 감정을 세분화하여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타인의 기분을 알아차리기 위한 첫 번째 단추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아는 감정에 한해서만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 감정의 이름을 알고 직접 느껴보며, 그 마음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는,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타인 또한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임을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3. 타인의 표정을 보고 타인의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엄마, 담임선생님, 치료사 선생님, 친구, 형제의 표정을 보고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어 본다.

표정 카드를 보고 어떤 표정인지 맞추는 퀴즈를 한다. 


4. 상황에 어울리는 표정과 말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거울을 보며, 엄마가 '기쁨'이라고 말하면 기쁜 표정을 짓고, '화남'이라고 말하면 화난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한다. 엄마의 표정을 따라 하거나 거울을 보고 스스로 연습도 해본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엄마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하고,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똘이도 상황에 적절한 표정을 짓거나 말을 할 수 있게 연습한다.


너무 기계적인 것 아닌가?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자폐 스펙트럼 아이에겐, '감정이 오가는 상황'을 수백 개 학습하는 것보다  '적당히', '융통성 있게', '눈치껏'이라는 말이 더 어렵다. 그리고 나는 학습을 통해 내면화된 감정에도 언젠가는 진심이 담길 수 있다고 믿는다. 똘이는 기쁨, 슬픔, 자랑스러움, 아쉬움 등 다양한 감정을 스스로 인지하지만 못할 뿐 다 느끼고 있다. 학습을 통해 좀 더 세세하게 범주화해 주는 편이 똘이에게도 좋을 것이다. 머릿속에 무수한 '행동 매뉴얼'이 있다면, 똘이는 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이건 똘이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감능력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배워야 발견할 수 있고, 인지해야 공감할 수 있다.


똘이는 씨앗이다. 아직 물이 닿지 못한 마른 씨앗일 뿐이다. 

똘이도 언젠가 새싹이 되고 줄기가 되어 끝끝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일궈낼 것이다.


지금 나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건, 돌멩이를 씨앗으로 착각해서라거나 아스팔트에 씨앗을 뿌려서가 아니다. 


나는 지금 물길을 트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깊은 땅 속에 물이 있을 뿐이다.

씨앗은 마른 채로 있으면 10년이고 20년이고 돌멩이와 별 차이도 없는 딱딱하고 작은 알갱이지만, 물을 만나는 순간 새 생명으로 움튼다. 

물길을 트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울 뿐, 물이 씨앗에게 가 닿기만 한다면 씨앗은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 세상을 향해 머리를 들어 올리고 힘찬 호흡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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