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고 있다.
똘이는 중증장애(구 자폐 3급) 판정을 받았다.
검사, 진단, 접수, 심사. 그리고 드디어 판정. 돌이켜보니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벚꽃이 질 무렵 사회성숙도, 지능, 자폐, 주의집중력 등 전반적 발달검사를 했었다. 햇볕이 점점 뜨거워진다 싶을 때쯤 진단이 나왔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그래도 울었다. 폭우가 퍼붓던 날 주민센터에 신청 접수를 했다. 옷소매가 다 젖어 서류에 빗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장애 등록 대상자란에 똘이의 이름을 쓰며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달 뒤 오늘, 깜짝 놀랄 만큼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진 날 똘이는 드디어 장애 등록이 되었다.
그중 어느 과정이 가장 괴로웠냐면, 단연코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이었다.
약 한 달간의 심사기간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결과가 나오기 마지막 일주일간은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된 것 같았다. 이삼일에 한 번씩 연금공단에 전화를 걸어 혹시 결과가 나왔냐고 물었다.(죄송해요. 연금공단...) 며칠 걸러 한번 문의 전화를 한 것도, 정말 큰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었다. 사실은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심사 결과가 나왔나요?”
“네, 결과 나왔네요...”
“저희 아이... 장애등록이 되었나요?”
“잠깐만요.... 하...”
담당 공무원이 왜인지, 짧은 한숨을 쉬었는데 나는 그 순간 똘이가 심사에서 탈락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등록되셨습니다.”
“정말요? 네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깊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언 한 달 만에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통과되었다’는 말 한마디를 한 달 동안 간절히 기다렸다.
막상 장애등록을 하게 되면 마음 한켠이 슬플 줄 알았지만 진심으로 기뻤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안도했다. 안도감. 100%의 안도감이었다. 똘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
장애등록을 결심하기까지 무수히도 고민했다. 이 선택이 똘이의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기에. 행여나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나중에 똘이의 원망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많은 고민 끝에 똘이를 ‘장애인’으로 정식 등록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접수 당시, ‘검사 결과로만 보면 장애등록 기준에 해당하지만, 최근 들어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반려되거나 자료보완 요청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더 큰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중에야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학적으로 장애 진단을 받는 것과 국가(복지부)에서 장애인으로 인정하여 장애등록을 해주는 것은 또 별개의 일이었다. 의사로부터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하면 당연히 장애등록을 할 수 없지만, 의사로부터 장애 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장애등록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장애등록’이란 말의 의미는 ‘국가에서 당신을 장애인으로 인정하며, 국가에서 정한 혜택과 헌법에 규정된 장애인의 권리를 주겠다’는 의미다. 즉, 장애 진단을 받아도 장애등록에서 떨어지면 장애인으로서의 혜택을 보지도 법적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장애 진단을 받은 것도 서러운데, 장애 등록에서마저 ‘탈락’하게 되면 우리 똘이는 이제 어쩌나...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우리 아이가 장애인으로도 정상인으로도 살 수 없게 될까 봐.
한 달 밤낮을 꼬박,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속앓이를 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똘이는 장애인으로 ‘인정’ 받았다. 재판정 기한은 6년이었다. 똘이는 장애등록을 유지하려면 6년 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 말인즉슨, 똘이는 앞으로 6년간은 헌법 제34조, 장애인복지법의 보호를 받는 ‘장애인’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6년 뒤 똘이가 크게 발달하여 재심사에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통과하게 되면 통과하는 대로 모두 좋을 일이다.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며칠 뒤 우편으로 똘이가 받을 수 있는 장애인 혜택이 줄줄이 적힌 안내서 몇 장이 날아왔다. 그간의 고민과 마음고생에 비하면, 코웃음이 나오리만치 보잘것없는 혜택이었다. 월 십여만 원 정도의 치료비 지원, 전기세나 수도세 등 일부 감면, 연말정산 시 장애인 공제 혜택 등... 크다면 크지만 하찮다면 한없이 하찮은 혜택이다.
하지만 이런 금전적 혜택을 생각해서 장애등록을 한 것은 아니므로 상관없었다. 내가 원한 것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다. 어쩌면 똘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게 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똘이를 편견에 가두어 버릴지도 모르는 조금은 두려운 울타리. 하지만 혹시라도 우리 부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똘이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줄 최소한의 울타리. ‘헌법 제34조, 장애인복지법의 권리를 대상자’이라는 것이 부디 ‘장애인’이라는 묵직하고 아픈 이름만큼, 아니 그 이름의 1/10 만큼의 가치만이라도 있길 바란다.
똘이가 울타리 문을 열고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 울타리가 똘이에게 최소한의, 정말 최소한의 보호막이라도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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