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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Apr 26. 2024

부작용으로 메디키넷을 단약하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불안, 강박, 소아우울증 3종세트

 장애인복지관에서 주관하는 예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다. 예비학교 담당선생님이 아이를 면담하는 동안 나는 아이를 아이의 기초 정보 서류를 작성했다.  


 발달장애 판정 여부, 장애 종류, 약물 복용 여부, 문제행동 등 질문에 대한 답을 기계적으로 적어나가던 나는 마지막 질문에서 멈칫했다.


 “보호자가 생각하는 아이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장점, 똘이의 장점이 뭐더라. 순간 똘이의 장점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애교가 많고 잘 웃고 장난기 넘치고 스스로 시간을 잘 보낼 줄 앎’


 나는 똘이의 장점을 적기 위해, 약물 복용 전의 똘이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메디키넷은 똘이의 단점을 줄여주었지만 똘이의 장점 또한 사라지게 만들었다. 새삼, 그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그러던 차,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요즘 똘이가 하나도 행복해 보이질 않아요. 표정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실제로 그랬다. 메디키넷을 복용한 뒤, 산만함, 충동성, 감정기복이 다소 잡히기는 했지만, 아이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예민해졌다. 즐거운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아이. 이게 7살 꼬마아이라니. 이게 우리 똘이라니. 


 “선생님, 똘이가 어린이집에서 하루에 몇 번 정도 웃나요?”


 “글쎄요... 한두 번, 저를 보며 힘없이 피식하고 웃는 거 외엔 거의 웃지 않아요.” 


 메디키넷을 먹인 후, 오후에 짜증과 예민함이 폭발하는 건 어쩔 수 없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오전에 기관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거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똘이는 오전 기관생활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만큼 무기력해졌다. 무엇에도 자신감도 의욕도 흥미도 없는 무표정의 아이가 되어버렸다. 소아우울증 체크리스트를 해보니, 절반 이상의 문항이 똘이에게 해당되었다. 체크리스트 결과는 ‘소아우울증 가능성 다소 높음’이었다.



 아이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상의드리니, 자폐스펙트럼과 adhd가 함께 있는 아이의 경우, adhd약(메디키넷)의 부작용인 불안과 강박증상이 더 심하게 올 수 있다고 했다. 약물 특유의 각성효과도 있겠지만, 동반된 불안과 강박이 아이의 기분을 다운시키고 자신감과 의욕을 더욱 떨어뜨렸으리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묻자, adhd 환자는 약물의 도움으로 증상을 조절할 필요가 있지만, 약물 복용 여부는 부모의 선택이며 약물의 장점과 부작용을 저울질하여 더 중요한 쪽을 선택하라고 하셨다. 


부모의 선택이라....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싶은가? 

아니, 똘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까? 


 약물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약물치료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글쎄...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약의 효능과 부작용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판단이 되질 않았다. 




 사실, 사실은 예전의 똘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쩌면... 어쩌면 약을 끊어도 8개월 전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기간 동안 똘이가 조금은 성장했을 수도 있으니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단약을 해보고 싶었다. 단약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단약을 해서 또 문제행동이 나오면 또다시 처음부터 약물 적응을 해야 한다.  최소 2주... 길면 몇 달을 고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신이 필요했다. 이 상황이 똘이의 최선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그것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1~2주 정도만 약을 끊고 경과를 관찰해봐도 될까요? 관찰해 본 뒤, 단체생활이 힘들다고 선생님께서 판단하신다면 그때 꼭 다시 약을 먹이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도 어머님의 판단을 존중하고 도와드리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메디키넷을 끊자 신기하게도 똘이는 예전의, 내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바로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애교 많고, 잘 웃고, 잘 먹고 엄마가 너무 좋아 엄마를 껴안고 볼을 비비는, 먹고 싶은 게 많아 냉장고를 뒤지고, 장난기를 어쩌지 못해 치약이나 샴푸를 잔뜩 짜놓고 도망가고, 아는 것도 많이 없는 단어로 쫑알쫑알 떠들어 대는... 천둥벌거숭이, 장난꾸러기, 말썽쟁이,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아이로 돌아왔다.


나는 그 똘이가 너무 반가워 아이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어린이집에서는 곧바로 문제행동이 발생했다.


1.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 빈도가 매우 높아짐

2.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떼쓰고 우는 모습을 보임, 울음 그치는데 오래 걸림

3. 충동성이 높아져 교사의 개입이 많이 필요함


 예상은 했지만 막상 똘이의 문제행동 피드백을 받자 마음이 돌처럼 무거워졌다. 숨이 막혔다. 잠수종에 묶여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약으로 아이의 충동성을 꽉 눌러놓았던 약 효과가 갑자기 사라지니, 똘이도 감정 컨트롤이 안 되어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단약 후 경과를 보려면 적어도 열흘은 유지해야 하지 싶습니다. 2~3일로는... 약 복용이 여전히 필수적인 상태인 건지, 갑자기 약 복용이 중단되어 아이의 내면이 부침을 겪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이 정하신 기한이 지나도 똘이의 기복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복용 시작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앞으로 길게는 2주 정도 단약하며 그에 따른 행동을 관찰해 보아요. 똘이도 많이 힘들 거예요. 내일도 제가 잘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똘이를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반에서 돌봐야 할 아이는 똘이 한 명이 아니니까. 많이 힘들고 버거우실 것이다. 그걸 감수하고 내 선택을 묵묵히 지지하고 도와주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수십 번이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지나친 감사의 표현조차 선생님께 혹여 마음의 짐이 될까 봐 그 말을 뱉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이대로 며칠 더 지켜보아도 똘이의 문제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똘이는 다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메디키넷을 다시 먹이던지, (전에 실패한) 아빌을 추가하던지, 아니면 콘서타를 시도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똘이의 모습과 어린이집에서 순응적인 똘이의 모습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여야 한다는 것을.


 똘이를 가정보육 할 것이 아닌 이상, 기관 생활에서의 문제행동을 최소화하는 방향이 맞다. 똘이는 언제까지나 내 품 속에서만 살 수는 없으니까.


 어린이집을 가고, 학교를 가고,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려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 통제력을 기르는 것이 슬프지만 더 중요하다는 것도.



 그래도, 그래도 마음 한편에 희망을 붙들고 있다.


 어쩌면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3살 때의 수면장애가 5살이 되어 저절로 고쳐졌듯, 5살 때의 상동행동이 6살이 되니 저절로 소거되었듯... 어쩌면... 어쩌면 똘이가 성장하며 조금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고.


 단약으로 인한 반동반응이 끝나고 나면, 어쩌면... 어쩌면, 아이가 자기 통제력을 조금은 갖춘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약물을 잠시 쉬면서...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는 똘이와 함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아마도 희망은 희망일 뿐일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언젠가 약물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2주 안에 결과는 나올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결과가 아닐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래도 실망하고 좌절할 것 없다. 


왜냐하면


1. 최소한, 약물 치료에 대한 확신을 다시금 갖게 될 것이다.

2. 약을 끊어서 똘이가 밝아진다 해도 기관에서의 부정적 피드백을 피할 수 없다면 어차피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3. 무엇이 결과적으로 똘이를 가장 위하는 방법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바람대로 안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똘이를 위한 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4.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똘이에게 맞는 약물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다.

괜찮을 것이다.


10년 후의 똘이는 지금보다 나은 모습일 것이다.

나는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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