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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9. 2023

장애등록을 어쩌면 좋을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할 수는 있을까.

똘이가 7세가 되어도 별 발전이 없다면 장애등록을 해야겠다고 전부터 생각해 왔다. 세상에 자기 아이를 장애인으로 만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장애등록을 하든 안 하든 똘이의 상태는 똑같을 것이다. 타인이 똘이를 장애인으로 본다면, 그것은 똘이가 장애등록을 해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장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보호를 받고, 조금이나마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게 장애등록을 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남편은 장애등록 사실 때문에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선입견을 갖거나 차별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나의 경우 그 부분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부모가 오픈하지 않으면 아이가 장애등록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다. 설령 담임선생님이 알게 되신다 해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겪어온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더 살뜰히 봐줬으면 봐줬지 차별하는 일은 없었다. 



교사도 인간이기에 힘든 아이를 만나면 버겁기도 하고 때론 화도 난다. 하지만 아이의 문제 행동이 ‘못된 심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장애로 인한 것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행여 라도 아이가 학폭을 겪더라도 조금 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특수학급에 입금하기도 수월할 것이다. 



장애등록을 해서 실질적으로 가장 크게 혜택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입시, 취업, (남아의 경우) 군입 부분이다. 입시나 취업에서 장애인 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건 정말 큰 혜택이다. 감정 조절을 힘들어하고 눈치도 없고 상호작용이 여러운 똘이이기에 군대 문제는 벌써부터 우리 부부의 큰 걱정거리다.



한번 장애등록을 해서 그 자격이 쭉 유지된다면 오히려 하루빨리 장애등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복지체계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장애등록은 약 5년마다 재심사를 진행한다. 검사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가 나오면 짤 없이 장애인 신분을 박탈? 당한다. 여전히 일반인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 해도 장애등록 기준에 못 미치면 하룻밤새 일반인이 되어버린다. 



똘이가 대입이나 군입 때 장애등록으로 인한 혜택을 보려면, 똘이는 지금 장애등록을 해도 약 2번의 심사에 더 통과해야 한다.(영재 심사도 아니고 장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심사에 통과해야 하다니... 웃프다.) 사실 우리 부부는 똘이가 만 18세까지 장애등록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똘이가 정상범주에 들 것이라고 믿어서라기보다, 우리나라의 복지 사각지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똘이는 자폐스펙트럼도 경한 쪽이고, 지능도 경계선이다. 지금처럼 치료를 한다면 장애등록이 가능한 선은 한 끗 차로 벗어나지만, 일반적인 사회생활은 어려운, 그야말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위험이 있다. 성인이 되어 최소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만큼 ‘잘’ 키워내려면 집 한 채는 족히 살 만한 비용이 들 것이다. 치료를 받아도 일반인과 장애인의 경계 그 어딘가에 있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치료를 한 덕에(?) 장애인마저 되지 못할 공산도 크다. 그럼에도 치료를 멈출 수는 없다. 똘이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주고 싶기에.



이렇게 보면 지금이라도 장애등록을 해 놓는 것이 똘이에게 유리할 것 같다. 한 가지 내가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똘이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었다. 똘이의 지능은 일반학급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에 따라가기는 힘들 만큼 낮고, 특수학급에 가거나, 장애인 복지카드가 있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만큼은 높다. 특수학급에 가는 거야 ‘똘이가 아직 선생님이랑 따로 만나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서 그래.’라고 뭉뚱그려 설명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장애등록’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닌가. 장애인 카드에 ‘oo장애’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예 숨길 것인가? 숨기는 게 가능할까? 모두가 그렇듯 똘이도 사춘기를 맞을 것이다. 혹시라도 사춘기 때 알게 된다면? 



부모가 자신을 장애인으로 등록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을 정도의 인지능력을 갖고 있는데,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상의 없이 부모가 이를 결정하는 것이 맞는 걸까? 문제행동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똘이는 엑스야? 똘이는 같이 놀 수 없어?”라고 말하며 울상을 짓는 아이다. 자존심은 세지만 자존감은 낮고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는 아이라,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다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종이를 구기고 연필을 소파 밑으로 숨겨버린다. 엄마가 아무리 잘했다고 말해주어도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아이가, 자신이 또래와 조금 다를 뿐 아니라 정식으로 등록된 ‘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걸 잘 소화시켜 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느라 묵혀놓은 방학숙제처럼, 아이의 장애등록을 미루어 왔다.



하지만 사실 맘 속 깊은 곳에선 알고 있었다. 아이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상처받거나 열등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받지도, 법으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일반인 속에 억지로 섞여야 하는 것보단 낫다는 것을.


사실은... 사실은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언젠가는 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도망치고 싶었다. 똘이의 사진 옆에 ㅇㅇ장애라고 적힌 카드를 받아 들 자신이 없었다. 국가가 정식으로 내 아이를 장애인이라고 규정 내리는 것을 보류하고 싶었다. 어쩌면 괜찮을 지도 모르는 아이니까. 세돌이 지나면, 유치원 갈 때가 되면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 6세가 되었다. 

더 이상 미루기만 할 수는 없었고, 드디어 결심이 섰다. 똘이가 더 발달해서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정상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지금, 정상인으로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똘이에게 하나의 안전망을 만들어주자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생겼다. 이번에 한 풀배터리 검사 중 지능 항목에서 똘이가 뜻밖의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똘이는 약 73점을 받았다. 물론 그 점수도 경계성 지능 수치이다.(81~100까지가 평균, 71~80이 경계선, 70 이하가 지적장애 수치이다.) 작년 말, 똘이는 지능검사에서 67점, 그러니까 지적장애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당시, 자폐는 각오했어도 지적장애를 동반할 거라곤 생각 못했던 나는, 처참한 점수를 받아 든 뒤 미친년처럼 울다가 허겁지겁 인지치료를 시작했었다. 그 이후 반년 만에 평균 수치가 5 정도 올라서 73점이 나온 거다. 예상컨데, 인지 치료과정에서 아이가 지능검사 문제의 패턴을 어느 정도 익혀서 이번에 점수가 높게 나온 듯싶다.



아이 컨디션에 따라 검사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거나 아이의 지능이 오른 거다. 문제의 패턴을 외운 거라 해도 그걸 외워서 검사에 임한 것도 장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절망감과 자책감이 밀려왔다. 지능이 71이 넘어버리면, 자폐로 판정을 받아도 장애등록이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심한 자폐일 경우 지능 71이 넘어도 장애등록이 가능하지만, 경증 자폐의 경우엔 장애등록이 힘들고 설령 가능하다 해도 장애등급도 최하 등급이 된다.


이제 똘이의 장애등록 여부는 나의 손을 떠난 것 같다. 똘이의 자폐 척도가 얼마로 나오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불과 반년 전에는 내가 결심만 했더라면 장애등록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자폐 척도가 높은 수치가 나와야 장애등록이 가능한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똘이의 지능지수가 높아진 걸 기뻐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똘이의 자폐척도가 높게 나오길 바라야 한다는 것도 슬펐다. 똘이는 전보다 시험을 훨씬 잘 친 것인데 난 똘이를 기특해할 수도 나의 노력에 뿌듯해 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 따위 서글픔이야 얼마든지 괜찮다. 장애등록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비하면.


똘이가 심한 자폐이길 바라지 않는다. 똘이가 경증이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경증이면 똘이는 장애등록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상발달 아이와 같은 선에서 경쟁할 수는 없을 아이다. 



이상하다. 장애등록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요리조리 장단점을 비교하며 고민했었다. 그런데 장애등록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당장 장애등록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든다. 


똘이의 장애등록과 관련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봐, 아니 이미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을까 봐 두렵다. 

더 일찍 장애등록을 했어야 했을까.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으면 어쩌지. 순간의 판단 실수로 아이가 장애 등록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내 순간의 실수가 똘이의 인생을 크게 좌지우지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

살면서 두고두고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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