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3
어느 채널 중에 집에 관하여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보았던 적이 있다. 산간오지에 살거나 섬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와 유사한 방식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사회자인 건축가가 방문하여 그들의 삶과 집을 연결했다는 점이다. 산속으로 들어가 뭘 입고, 먹고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가 짓거나 구매한 집을 소개하며 이곳까지 들어오게 된 이유와 설계 방식들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각자의 사연만큼 작은 오두막부터 큰 대궐까지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집들이 소개된다. 구매하신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본인 스스로 지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세상엔 정말 능력자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집에 조금씩 관심이 간다. 가격이나 위치 등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평수이다. 난 평수가 넓은 집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방송도 크지만 예전에 읽었던 월든이라는 책에서 영향을 깊게 받은 듯하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이 책은 나에게 집이라는 것에 대해 관점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 내 삶도 이 책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했다. 작은 집으로 부터 얻는 자발적 고립과 내면의 평화, 육체의 안녕을 생각하면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를 어떤 희열이 느껴진다.
내가 필요한 평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정리되어야 할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없으면 정말 죽겠다 싶은 것들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그런 것들을 나의 삶에서 자주 눈여겨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좋아했었는지 등과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나의 작은 평수에 넣어둘 것은 뚜렷해진다. 더 포기하고 더 정리할 수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종종 든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에 조금이나마 해명을 해보면 워낙 소비에 박한 내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에 나온 건축가분들이 말하길 '버려야 채워진다.'라는 말이 감명 깊었다. 바로 덧붙여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렵다.'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무엇을 버릴 수 있고 그 빈 곳에 어떤 것이 채워지길 바라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본다. 그럴수록 내가 살고 싶은 정답 없는 삶이 어떤 것이지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