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6
집에 박혀있는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주변에 널려있었다. 방안의 탁한 공기를 환기시켜야 했고, 허물 벗은 뱀처럼 널려있는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책상 위의 물통과 컵 등 널려 있는 것들을 치워야 했다. 이젠 지겹다 못해 다 똑같아 보이는 배달음식보다는 무엇을 해먹을지 엄마와 상의해야 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음식들을 엄마에게 표현했다. 매콤하면서도 달달하다거나, 뜨거우면서도 개운한 것, 차원이 다른 시원함을 가진 어떤 것들을 말하면 '너는 손이 없냐?, '제발 엄마 좀 사줘봐' 라며 다그쳤다.
평소 헛간 잃은 소처럼 밖으로 쏘다니던 나에게 좁은 집콕 생활은 시련과도 같을 법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집콕 생활은 이제 바깥보다 넓고 깊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꽤 진지하며, 집이 바깥보다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철 지난 농담이 아니다. 오늘은 그것에 관하여 써보려 한다.
예전에는 영화를 봐야 세상사를 깊게 이해하며 공부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대한 자본과 치밀하게 짜인 각본 속에서 웃고, 울고, 눈물 흘리는 배우들과 비현실적으로 움직여지는 사물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그것들은 사람의 삶과 인생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날 것을 그대로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더욱 눈길이 간다.
타이거 킹. 호랑이의 왕으로 직역되는 이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릭 커컴이라는 TV쇼 제작자와의 대화로 시작된다. 아마 처음부터 시작해야겠죠 라며 운을 띄운 그는 담배 한 개비를 태우며 말을 이었다.
"미쳤었죠."
이 말을 시작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조 이그조틱과 캐럴 배스킨의 7부작 다큐멘터리가 시작된다.
조 이그조틱은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 주에서 동물원을 운영한다. 주요 동물은 고양잇과 동물들인데, 호랑이와 사자 그리고 표범 등과 같은 부류이다. 그는 갓 태어난 새끼 호랑이를 실은 대형 버스를 타고 주변의 여러 지역의 대형 쇼핑몰들을 돌아다닌다. 신기하게도 그것이 동물원의 주 수입원인데, 작은 새끼들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행사를 연다. 쉽게 볼 수 없어 늘 문전성시였고, 조와 새끼 호랑이들의 몸값은 점점 치솟는다.
캐럴 배스킨 역시 동물원을 운영한다. 명칭은 빅캣 레스큐. 뜻과 같이 큰 고양잇과 동물들을 구조하며 보살피는 곳이다. 구조된 동물들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그녀는 말한다. 조의 동물원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주 수입원은 방문객의 입장료이며, 조의 밑에서 일하는 독특한 이력의 사육사들과는 다르게 빅캣 레스큐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운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래 이 동물원의 주인은 캐럴이 아니라는 점이다.
운영방식이나 그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물원 내, 외부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날 것 그대로 인터뷰되며, 조와 캐럴의 동물원들과 엮인 주변인의 삶을 낯낯이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속의 동물원들의 속사정과 둘의 대립, 그리고 그리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은 동물원의 운영과 그들의 대립이 아닌 미국의 민낯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미국이었고, 반대로 죽어가는 미국이었다. 현존 인류 최고의 국가이며 자유의 국가이자, 튼튼한 경제력과 강력한 국방력 그리고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 칭하던 빛나는 이름들은 없었다. 내가 본 그곳은 의료 빈민국이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를 가진 나라였다. 또, 휴전 중인 우리나라보다 더한 늘 전시상태인 듯했다. 총포상은 널려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어떤 총기든 구매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총이 널려있는 편의점 같았다. 보기 좋게 벽면에 걸어진 총기들은 번쩍였다. 기관총과 기관단총, 자동소총, 산탄총 심지어 폭발물까지 없는 게 없었다. 영화나 비디오 게임에서나 보던 모든 것들이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더 쓸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만 직접 보았으면 한다. 좁은 집에 꼼짝없이 박혀 본 이 시대 초강대국이자, 이역만리 거리에 있는 아름다울 미[美]의 뜻을 품은 나라의 생생한 민낯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