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bridge Autumn Letter

영국 여행편지 1 - 가을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겠어요

by 어진

늦가을 케임브리지의 나뭇잎 색깔 같은 핸드드립 커피 방울들이 뚝 뚝 떨어져 내린다. 그건 유서 깊은 도서관에 고이 간직된 고서의 페이지 속 나뭇잎들. 오래된 종이 속 글자들과 진리들은 나뭇잎에 스르르 스미고, 진리를 머금은 케임브리지 중정의 나뭇잎들이 커피잔 위에 켜켜이 쌓인다. 케임브리지의 오래된 흑갈색 학교와 정원과 잎들은 희디 흰 드리퍼 속에서 추억처럼 내려져 그해 가을 청년의 기억 속 케임브리지 위에 고요히 가라앉는다.


가을은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내려지고 침잠한다. 늦은 낙엽비 머금은 구름처럼 가을 가루들은 드리퍼 안에서 부드러운 거품을 그리며 무겁게 소용돌이친다. 하얀 흙 도가니에서 청년의 가을은 뜨겁게 정제된다.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이 되기 위해 그의 가을은 고통스러워야만 한다. 바스러지는 플라타너스 낙엽처럼 빨갛게 멍들어야 하고 뚝 뚝 추락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그의 가을은 은 같이 되기 위한 단련이 아니라 그저 낭비처럼 지나가는 헛된 날들이 뿐이다. 멍들어 추락하는 나뭇잎 빗무리는 그토록 아름답지만 골방에 갇힌 그의 가을은 떨어지는 참회록처럼 부끄러운 까닭이다.


설국처럼 하얀 드리퍼에 곱게 쌓인 청년의 흑갈색 추억과 깊은 생각들에 뜨거운 인고의 시간들을 조금씩 흘려보내면 물줄기를 따라 돌며 깊이 내려앉는 기억의 소용돌이. 그건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유리 창문을 깨고 호그와트로부터 도망치며 몸부림칠 때 안개가 자욱한 구름 속을 날아가는 비행운. 비행하는 그는 얼마나 자유로웠으며 또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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