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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Oct 14. 2022

두 달 만에 다시 백수 된 사람

나의 왼 손




든든히 받쳐줄 창업 자본이 없는 사업자는 다른 일과 병행하는 일이 흔하다. 나 또한 내 사업과 병행할 스트레스 적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취직했는데, 일단은 다시 백수가 되었다.








나의 든든한 왼손이 외상을 입었다.



몇 주간 연이은 야근에 갑자기 일어서다가 핑 돌아서였는지, 발에 다리미선이 걸린 건지 엎어지려는 찰나. 하필이면 짚은 것이 핀봉이라(핀과 바늘을 꽂아두는 작은 쿠션) 꽂아둔 바늘 너덧개가 손에 푹 꽂혀버렸다.


억소리도 안나는 상황에 오히려 침착해져서 바늘을 다 빼는데, 실만 한 줄 손바닥에서 나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바닥이 불룩했다.







엑스레이로 촬영해가며 바늘 위치를 찾는 중





무려 바늘이 손바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버려 부득이하게 손바닥을 가르고 꺼냈다.


아픈 마취주사를 몇 방이고 맞고,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간 탓에 수술시간(?)이 길어졌고, 예상 못한 고통에 괴로워하고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꼈다.

지혈이 안되어 꿰매는 바늘 자국에도 피가 샘솟아 한참 애먹던 선생님은 간단한 설명과 함께 사라지셨고
언뜻 본 내가 누워있던 침대는 핏자국이 선연했다.



피를 보며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문제는 움직일 수 없는 왼손에 있었다.
엄지와 검지는 움직임이 수월했지만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은 조금만 움직여도 몇 초 후 찌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몇 해 전, 왼 발 인대 문제로 깁스를 했을 때 오히려 오른 다리가 무리가 되었다. 그래서 왼 발이 크게 아프지 않을 무렵 기브스를 빼버렸더니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여지없이 왼 발이 욱신거린다.


마찬가지로 지금 아픈 걸 참거나 대충 넘기면 계속 고생할 거라는 생각에 나는 일 하지 않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용기라고 하기에는 이기적이고 우스운 선택일지 모르지만 손으로 먹고사는 나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즉시 퇴사처리가 되었고, 나는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언니가 떠돌이 싸움꾼 같다고 했다. 왠지 취췻-하며 흉내내게 된다.










생각보다 왼손은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왼손이 자유롭지 못한 나는 바늘에 실 매듭도 제대로 못 짓고, 단추도 잘 못 잠근다. 클렌징폼에 거품을 내려면 손등을 써야하고 핸드크림도 잘 못 바른다. 노트북 자판에 양손을 편히 올려놓지 못하고, 팔짱을 끼면 압박이 돼서 금세 풀어야 한다. 주먹을 쥐거나 손을 웅크리는 건 언감생심이다.


수 일, 수 주는 조금 불편할 텐데 마음은 영원히 불편할 것처럼 불안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보다는, 스스로 멈출 수 없는 고장 난 차가 가드레일에 부딪히고서야 멈춰진 느낌이었다,

충분히 쉬고 돌아오라는 말씀도 해주셨지만 제어되지 않는 차에 다시 올라타고 싶지 않아서 아예 퇴사를 택했다.



날 샐 때까지 놀아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예정된 퇴사일보다 갑자기 당겨져서 바다에 노를 잃고 표류하는 느낌이지만, 재정비 단단히 잘하고 잃어버린 노를 되찾아야지.
렇게 멈춰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꾸준히 조금씩 노를 젓다보면 느려도 잘 도착할 거라 믿는다.


방향은 내가 잘 아니까.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고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오후.


낮의 볕은 이렇게나 예쁘다.



소화기도 예뻐보이는 가을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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