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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Aug 29. 2023

번-아웃







높게 쳐진 파티션을 넘어 누군가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면

흡사 고요한 공성전이 시작된다
내가 먼저 스러지면 아니되므로
먼저 화살촉을 겨눈 자가 대체로 이긴다

귀가 먹먹해질만큼 팽팽한 공기 속 

백개의 화살이 이쪽으로 쏟아지는 것 같기도,

잔뜩 숙인 고개 뒤로 서슬퍼런 낫이

뒷덜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것 같다

그러다 또 다른 날에는
세상에 나를 향한 뾰족한 것 따위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루틴처럼 돌아오는 긴장과 이완

제풀에 지친 나는 맥이 풀려버린다


나를 향한 것이 날붙이같은 뾰족한 것이건,
푹신하고 보송한 것이건 다 상관없이 지쳐 주저앉



어쩐지 백 개의 단어로 슬픔을 설명하는 것보다
집에 와서 보는 당신의 얼굴이 더 서글퍼지는 날이다

세상에 유해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듯,

눈을 감고 얕은 숨으로 선잠을 자다
자그마한 발소리에 깨어나 나를 꼭 안아주는


세상은 그런 곳이야
무릎을 내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손 하나로도 안심할 수 있는

어쩌면 내가 그를 토닥여주며 숱한 유해한 것 들로부터 무적이 되어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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