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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08. 2022

빈 가지 옆에 내가 있다

박수근의 그림과 관련해서

시선은 마음을 담는다. 꽃나무 옆에서 꽃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들, 그 마음을 꽃처럼 물들이고 꽃처럼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목>에 나오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빈 가지에 두 여자가 지나간다. 왜 빈 가지로 그렸을까. 왜 여자가 스쳐갈까.


벚꽃나무 옆을 스쳐갈 때 내 마음은 벚꽃처럼 환하지 않지만 환하게 만들어야 하나 싶었다. 오히려 빈 가지가 나와 잘 어울린다 싶었다. 벚꽃나무를 올려다보며 시간만 잘 간다고 생각했다. 겨울에서 봄... 금방이다. 그런데 빈 가지라... 나와 같이 황폐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황폐한 마음을 담고 있는 사람 아닐까? <나목>에서처럼 전쟁 중이었다면 살기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전쟁은 왜 일어났던가, 나는 왜 태어난 건가, 아이들에게 오늘은 뭘 줄 수 있나... 많은 원망을 하며 빈 나무를 봤을 것이다. 가끔이라도 원망하며, 가끔이라도 눈물 흘리며.


나는 오늘 이비인후과에 갔다. 동네 병원을 가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른은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인가? 두려움을 이기며(이기는 척하며) 한 달만에 동네 병원을 갔다. 가서 의사를 만나니 의사가 그러더라. 큰 병원을 가 보세요. 이 말 한마디에 많은 원망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또... 또 큰 병원이라니...


빈 가지 옆에 내가 있다. 마음을 비우며, 혹시 착각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박수근이 왜 빈 가지에 여자들을 그렸는지 오늘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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