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lpit May 04. 2022

난 어쩌지

천천히를 되뇌며 사는

엄마가 말한다. 숨차네, 천천히... 천천히 걸어.

내 소식을 듣고 일부러 긍정적인 척하는 후배가 말한다. 천천히 걸어요. 천천히 걸으면 주변의 것을 잘 볼 수 있으니 언니의 관찰력이 좋아지겠죠.


둘 다 틀렸다.

천천히 걸어도 숨은 차 오르고, 천천히 걸으면 걷는 것에만, 다리를 디디는 방향에만 시선이 쏠려 다른 것은 더 못 본다.


<어른의 재미>에서 저자는 김형석 씨의 장수 비결을 말하면서 자기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냐고 했다. 난 지하철역에 다다라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그 이야기를 생각을 한다.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건 무척 어렵다. 나도 모르게 앞사람의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발걸음이 꼬이고 숨이 차 오르면 그제야 안다. 내가 내 속도로 가지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매번 속으로 되뇐다. 천천히... 천천히...


오늘 '낙치설'을 읽었다. 이가 빠져서 입술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그래서 노인처럼 보이고 음식도 제대로 씹어먹을 수 없다던 저자는 이가 빠진 것의 장점을 찾는다. 노인처럼 보이니 어디 나다닐 때가 없고 노인이라는 걸 잊을 수 없어서 나의 분수를 지킬 수 있으며,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이참에 소리를 못내 음미할 수 있으니 그것도 되었다고 한다.


정신 승리인가? 그것으로라도 위로하고 정신적인 것에서 만족을 느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가? 후배의 말처럼 장점이라곤 천천히 거닐며 관찰력이 좋아지는 것인가? 아직 단점만 보이는 나는, 잘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릴 때 발을 조심히 디뎌야 하고 계단을 오를 때 천천히를 되뇌며 하나씩 올라가야 한다. 웬만하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지하철에서는 손잡이를 꼭 잡는다. 웃을 때 얼굴을 가려야 하고 종이를 찢는 것도 안 되어서 가위로 해야 한다. 음식 차리고 설거지하는 건 더 어렵다.


내 속도로 가는 것도 어렵고 장점을 찾는 것도 어렵다. 난 어쩌지...

작가의 이전글 빈 가지 옆에 내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