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이었는지... 책을 나눠주자 싶었어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결론은 이렇다.
‘책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가지고 있던 책을 남에게 주는 건,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책이 내 재산의 전부다. 돈을 벌어 뭐 했나 생각해 보면 책 산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책이 많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해야겠지만, 아무튼 책은 내 재산이다. 그러다 보니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미소 짓는 나다.
책이 곧 나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책이 말해준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려고 책을 보니 두 책의 제목이 보였다. ‘왜 살아야 하는가’와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우울했으며 허무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그래서 읽었고 ‘생각의 각도’, ‘행복의 기원’, ‘행복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책은 나의 관심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내 마음에 와닿았던 책은 읽은 것이어도 책장에 한 권 있길 바랐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으면서도 책을 구입해서 내 책장에 꽂았다.
이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언니 집에 책을 보내면서부터다. 세종시가 아파트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언니는 세종시로 이사했다. 지금은 많이 발달해 있지만 이사 간 처음에는 아파트 주변에 도서관이 없었고, 있는 도서관은 이제 공사를 시작한 중이라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 언니는 심심하다고, 책도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책 한두 권을 택배로 부치기 시작했다. 책을 애지중지하지만 빌려줄 순 있다.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는 전제 하에. 언니는 책을 소장하는 것에 욕심이 없어,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기에 수월했다. 그렇게 언니 집에 책을 보내다가 이번에는 병원에서 친해진 언니와 책을 주고받았다. 치료사 선생님께도 내 멋대로 책을 골라 읽어보라며 빌려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책을 소장하는 것보다 나눠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게 더 즐겁다는 걸 알아버렸다. 또 안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그동안 책을 소장하려고 했던 건 나의 욕심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제야 집에 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란 건 책을 많이 읽어 똑똑해진 내 머리였지, 텅 빈 머리와 책이 아니었다. 책을 가지면 그 지식도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착각했다. 그러니 틈틈이 책을 정리해야 했다.
‘골 때리는 스물다섯’이란 책이 있다. 내가 25살 때 책 제목을 보고 공감할 거라 생각하며 산 책이다. 이제 와 다시 보니, 25살 때 공감하지 못했던 게 떠올랐고 언젠가는 공감하겠지 하며 이 책을 책장에 둔 게 생각났다. 나의 25살의 일부를 떠올리게 한 책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해줘야 하나? 생각하던 중에 이런 글을 봤다.
좋은 주인 만나서 예쁨 많이 받고 웃음 많이 드려야 해, 안녕.
너를 보내지만 그릴 때의 마음만은 잊지 못할 거야.
책을 떠나보내야겠다. 나의 일부였지만 그건 과거의 나. 지금의 나와는 다르다. 책의 주인들을 찾아가도록 여기저기 보내야겠다. 대신 그 마음만은 잊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