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이들처럼 행동하리라 다짐한다.
‘내 모습을 보면 속으로 놀라겠지, 그걸 말로 할 수도 있겠다.’
H군을 만나러 가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짓는 표정과 말에 상처받을 것도, 우울해할 것도 없다며 여러 번 상황을 상상했다. H군을 안 지는 13년. 과외를 시작으로 만났지만 긴 시간 함께 하면서 제자가 아니라 아는 동생처럼 친근하다. 내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일 하러 갈 때 표정은 어땠는지 등 세세한 것도 다 기억하는 H다. 너무 친하다 보니 지금의 나를 보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빨리’ 알아차릴 것이, 조금 두려웠다.
“선생님!”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외모는 청년이나 여전히 내가 알던 앳된 H군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H군은 활기차게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주인공을 맡아 영상을 제작한 이야기,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이야기 등.
괜한 걱정이었다. H군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어색할 수 있는 틈을 없앴고 내가 말할 때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다려줬다. 내가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 없던 일로 만들 것처럼.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H군에게 지난 1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H군처럼 슬픈 일을 먼저 묻지 않고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기쁜 소식에 리액션이 크지 않다.
“나, 대학 붙었어!!!”
“... 다행이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고 언니는 하이톤으로 짧게 “축하해”라고 했으며 아빤 말이 없었다. 동생은 그때 어렸고. 기쁨이 차분함으로 변했다. 기쁨이 용기를 내어 더 기쁜 일이었음을 나타내지 못했다. SNS에 별 일 아닌데도 파티를 하고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며 별 일인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장점은 슬픈 일에도 이렇게 덤덤하다는 것이다. 소리 없이 울어주는 게 극대화된 표현이다. 언니는 이런 사람들의 대표 주자인데, 워낙 덤덤해서 나는 별 생각하지 않고 나의 병을 언니에게 알렸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통화를 하는데 언니의 대답이 들릴 순간에 언니가 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작게 들리는 ‘흑흑’ 소리. 그 소리에 나도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언니는 말했다. 자기가 스트레스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놀란 마음 표현하느라 크게 우는 게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슬프고 놀란 마음을 소리 없이 우는 것으로 나타낸다. 거기에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는 착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또 대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따지지 않고, 기다려준다. 만약 물어본다면, 정말 조심스럽게 물어보며 한 마디 덧붙인다. "나중에 말해도 괜찮아." 이런 사람들은 내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자신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배려한다.
그래서 난, 이런 사람들이 좋다. 기쁨은 축하가 없어도 나 스스로 행복하기에 주변 반응에 무신경하다. 그러나 슬픔은 다르다. 내가 잘못한 일로 벌어진 슬픔을 마주했을 땐 상대방이 넌 어쩜 그러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비난이 올까 두려웠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난하지 않고 아무런 말없이 날 바라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소리 없이 지켜봤다. 이번에도 그렇다. 내 느린 걸음에 맞춰 느리게 걸어줬고 말없이 차 문을 열어줬으며 손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했다. 긍정의 무관심이라고 해야 할까.
기쁨에 호들갑 떨지 않듯
슬픔에도 의연하게, 덤덤하게 곁에 있는 이들이 믿음직스럽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이들처럼 행동하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