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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13. 2021

착각에서 벗어나 겸손함을 되찾는다

차가워진 두부를 어떻게 따뜻하게 만드는가

며칠 전 엄마가 해 준 두부 김치가 생각났다. 뜨끈한 두부에,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 그것이 담백하면서도 맛이 있었다. 


"엄마, 우리 이번 주에 두부 사다 저번처럼 해서 먹자."

"그러자."

"근데 엄마 두부 어떻게 뜨겁게 해? 찜기에 쪄?"

".... 아니...."


나는 그때 엄마의 표정을 읽었다. 나를 보고 당황해서 눈빛이 흔들리던 엄마. 이렇게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딸을 어쩌면 좋냐며, 왜 이렇게 요리를 모르고 못하고 관심도 안 갖냐며, 평소에 하려던 잔소리를 꿀떡 삼키는 엄마의 목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이런 내가 뭘 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역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국어를 가르치려고 역사를 설명하고, 인물을 설명하고, 그러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국어의 표현법을 설명한다. 내용을 요약한다. 가끔은 철학을, 가끔은 미술을, 가끔은 과학과 기술을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듣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착각할 때가 있다.


'오올, 나 좀 똑똑한 듯.'


그럴 때 필요한 게 '요리'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란 사람이 진짜다. 이것이 민낯이다. 

(두부를 찜기에 찌다니...) 


학생들은 나에게 자주 묻는다. 책이 왜 좋으냐고, 책을 어떻게 틈나는 대로 읽을 수 있냐고.

그럼 나는 그런 질문들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서 

"아이, 이거 별 거 아냐. 그리고 선생님은 이것밖에 할 줄 몰라. 다른 건 하나도 몰라."

라고 말한다.


어깨가 으쓱해서 내뱉은 말이긴 하지만 이건 진짜다.

나는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책 읽는 게 제일 쉬운 것이다. 눈만 굴리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러다 졸리면 자면 되는 것이고...

 

책 읽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고, 하나도 없는 관심 탓에 잘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모든 게 다 생소하고 낯설고 어렵다. 그러니 말 그대로 '책만 아는 바보'가 나란 사람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다 보니 자주 나 자신이 똑똑하고, 그리고 상식을 갖고 있다고 착각한다. 게다가 학생들보다 권위가 많은 강사, 그리고 어른의 위치에서 오랜 시간을 서다 보니 내가 꽤 권위가 있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아닌데 말이다.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의실 밖의 공간이 필요하다.

요리는 그때 더 절실히 필요하다.


잘해서 먹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민낯을 보고 겸손함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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