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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02. 2021

마음의 나이는 몇 살?

나도 놀다가 출근하고 싶다, 깔깔거리면서 놀다가

학원에서 먼 곳으로 이사 간 학생이 있다. 이제 일 년 만 더 학교를 다니면 되는 터라 그는 전학 가지 않고 먼 곳에서 학교로, 학원으로 왕래한다. 원래부터 지각을 잘 하던 학생이라 집까지 멀어지니 지각을 밥 먹듯 자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멀다고 해서 일찍 출발하는 것도 없었다.



그랬던 그인데... 수업 시작 30분 전에 그가 학원에 왔다.

“저... 선생님...”

“어?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근처에서 놀다가 왔어요.”



학생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빈 강의실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마저 복사를 하는데, 문득 ‘놀다 왔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놀다가 학원에 일찍 오는 건 이 학원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다들 학원 근처에 사는지 여기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각에 맞춰서 학원을 온다. 각자. 그러다 보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놀다가 일찍 왔다는 말.



나는 고등학생 때 ‘놀다가’ 학원에 일찍 가는 학생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학교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 근처에 집이 있는 학생이었는데 친구는 아니었다. 친구와 같은 반에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던 터라 우리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떡볶이를 먹고 학원으로 갔다. 무려 한 시간 전에. 그러고는 빈 강의실에 들어가 재잘대며 떠들어댔다. 처음엔 학원에 일찍 가서 숙제를 할 의도였다, 처음엔. 다른 친구들도 일찍 학원에 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떠들어댔고, 다 같이 나가 맛있는 걸 또 먹었다. 학교에서는 친한 사이가 아니면서도 학원에서는 같이 놀던 사이처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누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오빠에게 반했다는 말도 들었고, 누가 키는 크지만 발 사이즈는 작다는 말도 들었다. 별거 아닌 말들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같이 설레고 같이 웃었다. 



그때가 17살이었다.



고등학생이 ‘놀다가’ 학원에 왔다는데 왜 웃음이 났을까. 요즘 고등학생도 초등학생처럼 친구들과 깔깔대고 노나? 이 학원에선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는 법 없이 각자 공부하고 각자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3이나 되었는데 놀다 오다니... 어리지 않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17살을 생각해 보니 그가 이해가 됐다. 지금의 나도 마음으로는 10대와 다를 바 없지 않나.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제는 번듯한 어른으로 보일 나이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10대의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마음뿐만 아니라 사는 것도 그렇다. 여전히 나는 한글을 보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리고 남들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대하는 직업을 가져서 나의 말과 행동은 어느새 학생을 대하듯 하는 게 기본이 되었다. 인사를 건네고, 관심을 가져주고, 마음 상하지 않도록 조심히 다가가고, 혹은 직설적으로 말을 건네 잘못을 꾸짖고. 그러다 보니 어른의 몸 안에 아이가 숨어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학생을 대하듯 어른을 대해도 문제가 전혀 없다는 걸 안다. 그들 마음 안에 아직 10대의 청소년이 앉아 있으니 말이다.



19살이 ‘놀다’ 왔다는 말.

그 말은 초등학생이 써도, 고등학생이 써도, 그리고 30대인 내가 써도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10대의 청소년이 들어앉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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