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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15. 2021

시든 꽃잎이 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눈으로 보지 마세요, 코로 느끼세요.


언니가 갑자기 꽃을 보냈다고 전화를 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농장에서 직접 배송하는 거라서 저렴한 가격으로 샀다고 말하며 언니는 집으로 엄청난 양의 장미꽃을 보냈다.



꽃 선물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종종 내 손으로 직접 사 들고 들어온 날은 있었다. 그런 날은 마음이 여려지는 날이었다. 처음 내 손으로 꽃을 산 날은 출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학원 근처 꽃 가게가 있었는데,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많지도 않은 적당한 양의 꽃을 묶어 팔았다. 그때는 무슨 마음이었나. 무슨 마음이었기에 관심에도 없던 꽃을 사기까지 했을까. 역시나 일에 치여 지쳤었나.



세 군데에서 근무를 했었다. 평일에 두 군데, 그리고 주말에 한 군데. 주말에 일하는 그곳이 나에겐 너무 버거운 자리였다. 주말에 일을 하게 되면서 평일의 한 군데를 정리했고, 그래서 평일에 이틀을 쉬고 주말에 꽉 차게 일을 했다. 그런데도 버거웠다. 오래 근무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 자리는 내 그릇에 맞지 않은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시기에 맞는 자리가 있다. 아무튼. 그곳에서 일을 그만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께서 자기가 지금 학원을 차리는데 어벤저스 팀이 있다나 뭐라나 뜬금없이 나에게 이야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그저 그분이 너무 웃겨서, 웃느라고 그분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담아듣지 못했다. 실컷 웃고 났더니 어느새 나는 그 어벤저스라는 팀에 소속되는 걸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있었고, 그렇게 나는 동료 선생님이 막 차린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학원은 정말 이제 막 문을 연 상태였다. 학원 내부 공사도 덜 되었고, 학원엔 네 명의 학생이 전부였으며, 아주 큰 벌레가 가끔 기어 다녔다. (여학생들과 벌레 잡는다고 땀을 뻘뻘 흘리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혼자 가서 수업을 하고 혼자 가서 문을 닫았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그때도 난 시스템이 없는 학원, 원장이 상주하지 않는 학원을 싫어했다. 엉성하고 엉성한 학원.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 맡기는 학원. 그 와중에 나는 외로워지기만 했다.



‘왜 자꾸 일이 꼬이는 걸까.’

마음에 들지 않는 학원에서 연달아 근무를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학원이 엉성해서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게 아니다. 예전 학원도 그랬지만 난 동료조차 없이,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지내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정이 필요했다. 강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안정, 튼튼한 토양이. 그래서였을 거다, 꽃을 산 건.



그 뒤로도 종종 나는 꽃을 샀다. 기분을 밝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종종 꽃을 샀다. 그래도 언니가 보내준 만큼 어마어마한 꽃은 처음 봤다. 엄마와 꽃을 두 군데에 나누어 꽂으면서 꽃향기에 신이 났다. 그랬던 꽃이 3주가 지나자, 이제는 꽤 많이 시들었다. 거실에 둔 꽃은 엄마가 버렸다. 내 책상에 둔 꽃은... 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책상에 앉으면 아직도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미세하게 자꾸 내 코끝에 닿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면 꽃은 이미 꺾이고 부러져 누가 봐도 버려야 할 상태인데 향기는, 아니다. 아직 아니다.



그래서 난 꺾인 장미가 한 번씩 내뱉는 꽃잎을 책상에서 주워 노트에 껴 둔다. 말린다. 꽃 노트가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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