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다짐은 그럴듯하게

2025.10.15 완벽하게 게으른 나에게 쓰는 편지

by 엄달님

2025.10.15.화 9:45


밤새 꾼 꿈을 어떻게 노트북을 펴자마자 잊어버릴 수가 있지. 신기하다. 깨지 않고 잠을 잤는데 일곱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힌 꿈을 어떻게 바로 잊어버리지. 꿈이란 뭘까 정말 신기하다.

숙면을 못 취하는 것도 내력이려나? 우리 집 여자들은 죄다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엄마는 40년 동안 반복되는 새벽 기상과 출근으로 못 자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구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여든여덟 해 동안 쌓인 고민을 밤새 생각하느라 못 자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우리 언니는 시험 스트레스와 각종 문제들 때문에 못 자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듣기에는 이모들도 수면제를 먹는다고 했다. 나는 유일하게 통잠을 자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을 꾼다. 우리 아빠가 그렇듯이. 아빠랑 아침에 일어나 만나면 무슨 꿈을 꿨는지 나누는 것이 일상인데, 오늘 아빠가 방에 들어오질 않는 것을 보면 새벽 일찍 골프 치러 나간 것 같다.


게으른 완벽주의로 브런치에 글 쓰는 것을 몇 달째 미루다가 오늘 첫 글을 써본다. 항상 내 성장을 가로막는 일등공신은 게으른 완벽주의라 번지르르 포장된 그저 게으름이었다. 내 나이가 이제 스물여덟의 끝자락인데, 어떻게 하면 이 생활태도를 버릴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다가 그만둔 것들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모닝페이지 쓰기다. 한때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꽤나 고취되어 있었던 것이 모닝페이지 쓰기다. 그런데 그만둔 이유는 첫 번째, 우선 너무 귀찮아서. 두 번째, 항상 늦잠을 자서. 세 번째, 간혹 일어나자마자 급히 할 일이 있어서. 뭐 이 정도겠지만 대부분 87% 이상의 확률로 첫 번째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모닝페이지 규칙이 어땠더라. 쓴 말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거였나. 규칙은 여러 가지지만 일단 일어나자마자 휘갈기는 것. 너무 열심히 쓰지 않기.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막 쓰기. 쓸 말이 기억이 안 나면 '기억이 안 나'라고 써도 되니 일단 쓰기. 뒤돌아보지 않기. 이미 쓴 것이 마음에 안 들거나 틀렸어도 고치지 않고 계속 써보기. 하지만 이미 타자로 이것을 쓰고 있는 나는 오랜 시간 쌓인 습관 탓에 Delete(삭제) 키보드를 습관적으로 몇 번씩 눌렀다. 오타가 생기면 누르고, 저장하려고 ctrl+s 를 누를 것도 습관이다.


밤새 편집실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너무 싫어서 전공에 대해 다시 고민했고, 그래서 케케묵은 오랜 꿈을 상자 저 밑에서 꺼내 먼지를 탈탈 털어 살려냈다. 나는 지금 배우다. 대학교를 다니던 중 뮤지컬을 해보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하고 그것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어간다. 저번달에 가족뮤지컬 하나를 끝마치고 현재는 다시 '구직자'상태가 되어 불안한 파도 위를 떠도는 나는야 대기만성형 배우. 아 이제 더 이상 쓸 말이 없는데 어떡하지 오늘은 다짐을 하는 날이었는데. 뭐 나야 그렇듯 매일 게을렀다가 새로운 다짐을 했다가 작심삼일을 백 번씩 반복했다가. 내 삶은 게으름과 포기와 그렇지만 다시 도전과 열정의 쳇바퀴 속에서 돌고 있었으니. 지금 내 머릿속은 무척 복잡하다. 쌓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 해보고 싶은 것들도 너무너무 많아. 답답한 것도 많아.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많아.


하나씩 풀어나가 보자. 엉킨 실타래의 가장 끝 지점을 찾아 단단히 묶여있는 매듭을 거꾸로 풀어내는 첫 번째 작업을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야. 물론 언젠가 또 포기할지 모르지? 괜찮아. 어차피 나는 다시 시작할 테니까. 참, 끈기 있게 태어난 놈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니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끈기. 아니야 끈기가 없다면 여러 번 두드리고 만져서 끈기 있게 성형해 주면 되지. 찹쌀떡처럼. 빈대떡처럼. 만지면 만질수록 끈끈해지는 것들처럼. 아, 비슷한 말을 어디서 봤는데. <봉순이 언니>라는 책에서였지. 이 책을 보며 엉엉 울었는데. 책도 다시 읽자. 활자와 다시금 친해지자. 그리고 조금만 일찍 자자. 맨날 하는 짓이 암 걸리기 싫어서, 운동하자 일찍 자자 바르게 먹자 다짐하면서 지키지를 못 하니. '내 안의 블루'(Blue우울감)가 찾아오면 가장 문제는 하던 것들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싹 다 중단해 버리지. 내 친구 나태가 지금 또다시 카톡 잠수함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다. 걱정이다.


그런데 한 번 조금씩 다시 시작하면 돼.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자. 양치를 곱게 하고 물을 마시자. 환기를 시키자. 아 물론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 스트레칭을 하자. 어저께 춤 레슨에서 배운 기초 동작들을 한 번 싹 해주자. 그리고 글을 쓰자, 다시 읽자. 프리랜서라고 너무 프리하게 그러지 말고 한 번 내 시간을 잘 운용해 보자. 이게 스물여덟에 한 번 다시 다짐하는 것들이다.

오늘 아침엔 나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너무 잔소리만 한 것 같아. 내 안의 잔소리대마왕아. 그렇다면 칭찬도 한 번 해주면서 아침을 깨워보자. 오늘 글을 썼어. 새벽에 할머니와 '불면의 블루스' 춤을 추고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어. 난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인생을 열심히 살고자 하는 아이인지. 아 아이는 아냐 이제. 어저께 갔던 춤 수업에서 혼자 순서 기억을 제대로 못 하더군. 원래는 가장 먼저 외우고 익히는 아이였는데, 스무 살들이랑 있으니까 다르지? 확실히. 그렇다면 그간 녹슨 것들 열심히 녹 지우개로 지워주고 다시 번들번들 기름칠해줘야지. 천천히. 천천히 가면 된다. 행복하게만, 이 길을.


이제 정말 일어나자. 잠 다 깼다.


오늘도 행복해라.


삼수이포의 아침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씩 꺼내봐야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