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지기 싫은 아침의 환기
2025.11.16. 일 7:34
오랜만에 일찍 눈이 떠졌다. 눈이 떠졌다기 보단 정신이 다른 때보다 좀 빨리 깼는데, 잠에서 깨고 싶진 않았다. 관성처럼 그냥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다른 습관을 만들려면 지금 모닝페이지를 써야 한다. 웬일로 아직 세 줄밖에 안 썼는데 정신이 멀쩡하다. 아쉽다. 이것보다도 더 무의식에서 휘갈겨야 나중에 보기 창피한 글이 될 텐데. 그래도 하품은 계속 난다. 분명히 오늘도 아주 복잡한 꿈을 꿨는데 기억이 안 난다. 한 30분 전 만 해도 선잠을 자며 '이 꿈 내용을 꼭 써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리고 말았다. 꼭 기록하고 싶었던 꿈은 너무 빨리 휘발되어 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 꿈은 며칠이 지나도 남아있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건 친구와 관련한 꿈이었는데 왜 이렇게 아직까지 꿈속 장면이 생생한지 모르겠다. 나는 늘 지나간 인연에 미련이 커서 모종의 이유들로 지금은 사이가 멀어져 버린, 아마도 인생에서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 친구들을 떠올리면 괴로워진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 빼곤 다 만나고 있던데. 내가 실수했을까, 내가 잘못했을까.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명백하게 내 잘못이었던 경우도 있고 서로가 미숙했던 일도 있고, 간혹은 내가 단호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생각을 시작하면 모든 게 아쉬워진다. 특히 어제는 고등학교 친구 민봉이와 오래전 사진을 함께 봤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지나가버린 얼굴들이 태반이라 나는 괴로워졌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는데,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다. 요즘 책을 많이 읽는 나태는 계속해서 읽어볼 만한 책을 추천해 주는데, 그중 하나가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 뭐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죽음을 무척 두려워하는 사람으로서 그 책 제목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켜졌다. 웬만해서는 그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책이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로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면 좋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밤만 되면, 새벽으로 향하면 슬퍼졌는데 오늘은 왜 아침에 슬퍼졌을까? 나에게는 여덟 시도 안 된 시간이 너무 새벽이라 그런가.
하지만 오늘은 슬퍼지기 싫기 때문에 급히 환기해 본다. (그러나를 썼다가 지우고 하지만으로 고쳐 썼다. 그러나와 하지만의 차이가 뭘까? 갑자기 궁금. 어떤 차이일지 추측을 나름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요즘 부쩍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현재 내 언어력이 많이 부족해졌고, 또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구나. 엄마는 글을 쓴다는 애가 왜 이렇게 모르는 말이 많냐고 한다. 인정. 사용하지 않다 보니까, 궁금해하지 않다 보니까. 자연스레 쓰던 말만 쓰게 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다양한 어휘를 쓰지 못하고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다. 잠결에 인스타그램에서 예전 논술 선생님의 게시물을 하나 봤는데, 그 글에 '파지'라는 단어가 있었다. '힘껏 파지한 연필'...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앞으로 쓸 말 하나 적립.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파지, 꽉 움키어 쥐다.
잠이 다 깼으면서도 조금 덜 깬 것 같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것보다도 멍하니 있고 싶다. 이전에 서울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난 그 대회가 좋다. 나라는 사람은 성격적으로도 더 그렇지만, 현대 사회인에게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라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복잡하게 생각할수록 사실 모든 일은 더 복잡해지고 반면에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모든 일은 간단해지는데, 자꾸만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거다. 멍 때리면서 잠시 가만히 있는 시간에 사실 극단적으로 괴롭거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높은 확률로 없을 거라고 본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것과 SNS 숏츠 콘텐츠를 넘기며 멍 때리는 건 또 다르겠지. 자꾸만 자극이 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멍이 아니겠지. 나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하지 않는 것도 어렵다. 어떻게 아무 생각을 안 하지? 반드시 어떤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던데.
지구에 약 70억 명의 사람이 있다. 세상엔 약 70억 개의 다양함이 있다. 특별함이 있다. 태양계에 70억 개의 우주가 있다. 나는 무척 특별하면서도 한편으론 전혀 특별하지 않다. 오늘 아침은 그 중간지점의 마음을 잘 지녀 해야할 일을 척척 하면서도 겸손을 축으로 중심을 잘 잡는 나로 살아보겠다 생각한다. (어저께 지나치게 본인이 특별하다고 믿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속상해진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나는 특별하다. 그렇지만 특별하지 않다. 갑자기 내 안의 우주에서 소용돌이가 인다. 정확히 무슨 감정 때문에 뇌가 어떤 신호를 보내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이것은 긍정적인 에너지다.
때론 죽고 싶은 만큼 슬퍼져 보는 것도 좋겠으나 때론 억지로 슬픔을 환기하는 것도 좋다. 오늘은 슬퍼지고 싶은 날이 아니다. 내가 불쌍한 날도 전혀 아니다. 처음 모닝페이지를 쓸 땐 지나버린 인연들이 떠올라 서글펐지만 사실 내가 어찌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친구 사이를 다시 놀려놓고자 아주 오래 지난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해본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예전의 우리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인간관계는 어쩌면 통제 밖의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성격 유형이 ENFP라 믿고 더 밝게, 더 엉뚱하게 나를 남에게 드러내곤 했다. 노력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런데 청소를 하다가 중학생 때 만들었던 MBTI 성격유형 검사에 따른 분석표(?)를 발견했다. 내가 당시엔 ESTJ였단다. 사실 그렇다. 나는 너무 솔직하고, 때론 그래서 남에게 상처를 줬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아마 그로 인한 숱한 갈등을 지나오면서 나는 내 성격을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틀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질이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지나치게 밝은 척하고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어느 하나 정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정확한 건 이제 모닝페이지를 그만 써야겠다는 거다. 40분이 넘게 썼다. 오늘 할 일
예술인 증명 보완 자료 제출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오디션 공고 정확하게 확인
리딩공연 측에 프로필 제출
밀린 일기 쓰기
책 읽기
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