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둘레 길을 걷다 #6. May 8 (트레킹 4일 차)
Dharapani 마을에서 다음 마을인 Danakyu까지 길은 평탄했다. Danakyu를 지나자 가파른 언덕이 나타났다. 숨을 고르고 오르기 시작해서, 중간에 한 번 쉬었다. 아주 천천히 올라가고 있어서 아직 3000미터까지도 못 올라왔다. 캐나다에서는 2000미터 이상 되는 산도 하루 만에 올라갔다 내려오곤 하는데, 안나푸르나는 워낙 커서 급하게 올라가지 않고 둘러둘러 천천히 올라간다.
포카라 Pokhara는 안나푸르나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포카라에 동쪽으로 차를 타고 가서 트레킹을 시작한 Besisahar은 안나푸르나는 동남쪽이다. 시작할 때 안나푸르나는 우리의 왼쪽에 있었다. 올라오는 동안 안나푸르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북쪽으로 마나슬루 Manasulu가 구름 속에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마나슬루는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산으로 8000미터가 넘는다.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을 보려면 좀 더 가야 할 것 같다.
열한 시쯤 Timang에 도착해서 이른 점심을 먹고 Chame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일정표대로 하면 내일 Chame에 가면 되는데, 혹시 날씨가 나빠지면 하루를 쉬어야 할 수도 있고 시간을 벌어놓으면 내려갈 때 여유 있게 갈 수 있어서 사흘에 갈 거리를 어제오늘 이틀 만에 가려는 모양이다. ‘어째 어제부터 생각보다 힘들게 걷는다 싶더니.. 갈만하다고 생각하니까 가는 거겠지’ 싶어서 별말 않고 따라 걷는다.
잠시 비가 흩뿌리다 그치고 Chame의 게스트하우스 Trekker’s Holiday에 들어가서 짐을 푸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지 않아서 다행이다. 덥지 않아 땀도 별로 흘리지 않아서 샤워를 건너뛰기로 했다.
식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킴이 내려오고, 디와와 애니타로 내려와서 같이 카드게임을 했다. 처음 하는 거여서 어떻게 하는지 익히느라 바빠서 재미는 없었다.
비가 좀 잦아들어서 쇼핑을 하러 갔다. 에밀리는 물에 타 먹는 에너자이저 가루와 정수용 알약을 샀고, 나는 이어폰을 샀다. 꼭 필요한 건 아닌데 350 네팔 루피 밖에 하지 않아서 쓰다 버릴 셈 치고 하나 샀다. 와서 들어보니 음질은 영 별로다.
첫날 날진 물통이 떨어지면서 금이 간 걸 덕테이프로 붙여서 쓰고는 있지만 새 걸 하나 사야 할 것 같아서 물통을 파는 곳을 몇 군데 가보았다. 날진이나 스위스 가가의 모양을 베낀 것들을 어느 상점에서나 팔고 있었다. 그냥 딱 봐도 가짜인 것을 알 수 있다.
플라스틱은 오래 사용하면 안 좋아서 물통을 만드는 플라스틱은 인체에 무해한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인증마크들이 있는데 여기서 파는 것들은 그냥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다. 몇 군데를 돌았지만, 진짜 날진 물통도 없고, 인증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사는 걸 포기하고 여기보다 큰 마을인 매낭에 가서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물건을 사러 다녀보니까 이곳은 카트만두와 포카라 같은 도시에 비해 물가가 엄청 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항 택시를 타면서 팁으로 100 네팔 루피를 줬는데 여기서 구입한 이어폰은 350 네팔 루피 밖에 하지 않았다. 포카라 식당의 음식값도 비쌌고 가게에서 구입한 생수도 여기에 비해서 비쌌다. 산골이 물류비용이 더 드니까 비싸야 정상인데 여기가 더 싼 거면 나는 바가지를 쓴 거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진짜 날진 물통은 여기서 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통이 필요하면 그냥 싼 걸 하나 사서 쓰다가 버리면 그만인데, 굳이 비싼 물통을 사겠다고 찾는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네팔 사람들은 비싸서 사지도 않을 거고 트레커 중에 살 사람도 별로 없는데 가져다 놓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괜한 수고는 말고 나도 싼 걸로 하나 구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