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왜 연봉 6천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나
어느 날 무탈히 업무를 잘 끝내고 퇴근하는 차 안에서 괜히 눈물이 났다. 얼마 남지 않은 하루가 아쉬운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조그마한 이유만으로 울기에 충분했다. 이런 하루들이 내 인생의 전부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면 마음에는 아득한 고통이 밀려왔다. 우는 것도 지쳐버린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엄마, 나 이 회사 다니는 거 싫어."
누구보다 나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 엄마가 울먹인다.
"엄지야. 너 그거 잠깐이야. 정신 좀 차려."
"너 왜 이렇게 나약해?"
"엄마 마음 무너지는 건 생각 안 해?"
"연봉도 높고 일도 편한 공기업 들어가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힘들 때마다 네 취업준비 하던 시절을 생각해 봐"
수도 없이 나 자신을 다그치던 저 문장들이 엄마의 목소리로 들리는 그 순간, 나는 정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알아챘다. 저 문장들이 바로 나의 감옥이었음을.
첫 출근하고 자리를 배정받아 자리에 멀뚱히 앉아있던 첫날이 생생하다.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하던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작은 세상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날 퇴사를 하자"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나의 무의식은 오늘의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발전공기업 입사. 이것은 내 생에 가장 큰 성공이었다. 사회의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 허둥지둥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몸을 불사른 후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삶. 이런 평범한 하루가 가장 간절한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퇴사하고 싶어'라는 문장을 밥 먹듯이 내뱉는 회사원들, 그 시절의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기를 3년, 나는 결국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발전공기업의 신입 사원으로 당당히 입사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발전소가 나의 근무지가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전력 품질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3년 동안 출근을 했다.
누구보다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입사했고, 그저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이제는 흐릿한 과거가 되었지만, 한때는 출근을 하고 싶어 밤잠을 설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서서히 달라졌다. 매일 아침 지나는 예쁜 시골풍경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실체도 없는 '안정적인 삶'을 좇고 있을 뿐이었다. 회사의 시계 초침은 조금씩 느려졌다.
주위 동료들은 말한다.
"그저 하루를 쥐 죽은 듯 잘 버티다가 가면 돼. 그게 바로 '안정적인 삶'이야"
이것이 정말이라면 이 삶은 내가 원하던 '안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나의 편협한 시야가 만들어낸 환상의 실체였다. '좋은 회사'. 그 안에는 6,000만 원이 넘는 연봉과 굳건한 내 자리가 있었지만, 안정도 꿈도 없었다. 회사는 내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잘 버텨내다 가면 따박따박 돈을 주는 곳이었다. 칭찬도 욕이 되어버리는 이곳에서, 나는 슬프게도 삶의 열정도 젊음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다가도, 생각해 보면 또 죽도록 힘든 것은 아니었다. 어렵게 합격한 회사였고 적응도 잘하고 업무도 잘 해내며 좋은 동료들과 즐겁게 다니고 있으면서도 퇴사를 고민하는 내가 돌연변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 말엔 뾰족하게 내세울 대답이 없었다. 그저 끝도 없이 머릿속을 쏘다니는 물음표들만 가득했다.
왜 아무도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꾸지 않는 것인가? 왜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가? 왜 부당한 순간들 앞에서는 모른 척 웃고 넘겨야 하는가? 이곳에서 나의 30년을 온전히 바쳐도 정말 아깝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이 모든 질문의 화살이 회사를 겨냥하고 있는 줄로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지는 것이 있었다. 이 질문들은 그저 내 마음의 투영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잘만 다니는 이 회사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지옥일 뿐이었다.
버틸만한 지옥이었다. 어제도 잘 버텼고, 오늘도 괜찮고, 내일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이렇게 조금씩 적응하며 사는 거구나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남은 30년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30년이 지나고 나면 뭐가 남아있을까? 이곳의 미시파시즘, 그 보이지 않는 억압에 길들여진 내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내팽개쳐지듯 정년퇴직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그려야지만, 죽기 직전의 내가 만족스러운 젊음이었다며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을 떠올리니 삶의 방법이 명확해졌다.
그래.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배우며 살자.
그런데 살아보고 싶은 모양에 따라 살아볼까 하는 결심에는 너무나 큰 염려가 따른다. 정답이라 자부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삶의 결과물을 단번에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난 좀 떨지 마, 원래 그렇게 사는 거야", "아직 젊어서 현실을 잘 모르는구나", "너네 집 부자야? 부자면 관둬" 하는 말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참나, 다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출생 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었나 보다. 그 계약서의 이름이 뭐라더라, '현실에 순응하기'라던가? 그 위약의 대가가 겨우 이런 혀끝 차는 소리 따위라면 미안하지만 나는 이 계약을 어겨야겠다. 나는 마땅한 의무를 짊어진 채 세상에 내던져진 물건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 인간은 그저 '생존 기계'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우주의 138억 년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지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혼해서 자식 낳고 이래저래 적당히 살다가 죽으면 '유전자 매개체'에 대한 도리는 다 한 것이다. 대단한 삶을 살아보기라도 할 것처럼 고민하는 이 순간의 나도 이 광활한 우주에서는 찰나에 왔다가 사라지는 유전자 복제 기계일 뿐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짧은 세상을 그저 여행하러 온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여행의 목적지는 어디가 되어야 할까? '어떤 보편적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행을 위한 가이드는 '사회구조'나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삶이라는 여행은 그제야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나의 여행은 따뜻한 날씨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호주 유학 이민'이라는 아주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찰나의 여행을 하고 떠난 한 인간의 흔적이 여기에 적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