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당신의 청춘 덕분에

내가 세상을 믿고 도전해 볼 수 있는 것 같아.

by 엄지

어느 금요일 밤, 나는 오기가 가득 든 두툼한 심술보를 들썩이며 말했다.

"나 퇴사하고 유학 갈 거야."


그 순간, 나는 내 앞의 두 사람의 마음에 무언가가 쿵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 30년 동안 동고동락한 그들의 마음은 쉽게 읽혔다. 그들은 빨라지는 심장에도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동시에 딸의 마음에 반발심이 들게 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정신 차리게’ 할 수 있을만한 문장을 생각했다. 적당한 문장 짓기가 어려웠는지 그들은 차례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나를 슬쩍 곁눈질하며 자신들의 통장에 남은 금액을 생각했다. 또 그들은 문득 '내 딸'을 부러워하던 동네 사람들을 떠올렸고, 또 친구들과 친척들을 떠올렸고, 그 앞에서 아닌 척 딸 자랑을 늘어놓았던 자신들을 떠올렸다. 이제 좀 한시름 놓고 살아보나 싶었던 그들의 마음에는 다시 막막함이 일었다. 치워둔 자식 걱정이 다시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똑같은 어느 주말이었다. 나와 부모님은 오랜만에 함께 외식을 했다. 상가 주차장에는 외식을 막 끝낸 세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야."

적막했던 분위기를 깨려는 듯 아빠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건 아마 나를 이해해 보기 위해 아빠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그는 분명 저 말을 내뱉기까지 자기 안의 청춘과 긴 대화를 나눴으리라.


아빠에게 나의 퇴사가 아쉽냐고 물었다.


"너도 자식 낳아봐"

"네가 편한 길 두고 고생하려고 하니 당연히 아쉽지"

"그래도 뭐 어쩌겠어, 아빠 세대랑 너희 세대는 생각이 다르잖아."


이렇게 말하는 그의 시선은 애써 먼 곳에 있었다. 내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세대를 넘어선 이해'라는 그 어려운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막 서른이 된 자신의 청춘을 떠올렸다. IMF가 터진 다음 해였다. 그 청춘의 집에는 체구가 작은 임신한 아내와 태어난 지 3년이 되어가는 딸아이가 하나 있었다. 광역시 변두리의 주택 2층에 딸린 전셋집이 그의 세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키는 180cm가 넘고 몸무게는 80kg이 넘는 그가 살기에는 조금 좁아 보였지만, 너도나도 힘든 시절에 그는 그마저도 행복했다. 가끔 그는 딸아이의 분유를 살 돈이 없어서 아내가 차려놓은 따뜻한 밥상 앞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러나 금세 눈물을 닦고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씩씩하게 돈을 벌러 나갔다. 그는 생의 가장 깊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그 시절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였으며, 간절히 원하던 것은 그저 '안정적인 삶'이었다.


지난했던 그 시절은 고이 뿌리내려 방금 막 열매 하나를 맺었는데, 그 열매는 예쁜 딸아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었다. 60세를 바라보는 그는 딸을 보면서 자신의 청춘을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서른은 그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매일 아침 화장품이 가득 쌓인 화장대 앞에서 눈썹만 대충 그리고 출근을 한다. 옷장에는 한두 번 입고 잊힌 옷가지 수십 벌이 걸려있지만, 회사의 패션평론가 아저씨들을 떠올리고는 그냥 유니폼을 입고 회사에 간다. 어제 입은 유니폼의 냄새는 썩 상쾌하지는 않다. 그래도 전 날 뿌린 30만 원짜리 향수 냄새가 아직 배어있어서 오늘만 입고 빨기로 한다. 늘 9시를 2분 남기고 출근에 성공한다. 이제 막 3년 차가 된 그녀는 회사 사람들 눈빛만 봐도, 그들이 나를 '회사 동료'로 생각하는지 아닌 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업무시간에는 미소를 장착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즐겁게 일을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늘 어딘가로 숨는다. 커피나 마시러 어디 나가자고 하면 질색하고 거절한다. 이중인격이다. 오후 6시가 되면 모두 기차놀이를 하며 사택으로 돌아간다. 떡볶이를 시키고 넷플릭스를 켠다. 월 44만 원짜리 헬스 피티는 회사가 힘들면 쉬기로 한다. 대신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의 하루를 구경하는데, 그 속의 삶을 비교하면서 비참해지거나 또는 교만해지고 만다. 배달 최소주문금액을 겨우 채운 푸짐한 떡볶이 옆에 맥주 한 캔을 놓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한다. 내일은 꼭 생산적인 어떤 어떤 것들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 잠에 든다.


나의 부모가 그토록 원하던 '안정적인 삶‘은, 이루어보니 이런 모양이었다. 이곳은 어쩐지 무료하고 답답했다. 나의 몸은 어딘가에 겨우 끼워져 있는 느낌이었고, 나의 시선은 내 안이 아닌 바깥에 머무르고 있었다.


두 서른의 모양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갓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동네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그 피시방에서는 손님들에게 '웰컴드링크'를 다회용 컵에 제공했는데, 나는 손님들에게 다녀온 그 컵들을 ‘유일하게 깨끗이’ 설거지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또 당시에는 피시방 내 흡연구역이 아직도 관행상 유지되고 있었는데, 나는 좌석을 닦아내다 담뱃재와 침이 묻어버린 행주를 늘 뜨거운 물과 세제로 수건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놓곤 했다. 단골 관리도 열심히 했다. 사장님은 나의 그 보이지 않는 '열정'을 기특해하시고는 내 시급을 남들보다 500원이나 더 올려주셨다. 나는 한 시간에 4,500원을 벌 수 있다는 것보다, "넌 요즘 애들 같지 않다"는 사장님의 그 말이 더 뿌듯했다. 그 이후로 쭉 요즘 애들답지 않아 보이기 위해 애썼다. 이제는 '애들' 축에 끼어 있기에는 머쓱한 서른이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까지 저 문장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아, 참고로 그 당시 우리나라 최저시급은 5,000원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서른은 아직 '애들'이 맞다.


서른은 '막 어른의 테를 내며 살아보려 하는' 애들이다. 쭈뼛쭈뼛 어른이 되어보니, '요즘 애들 같지 않다'는 말은 어쩌면 칭찬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저 '무엇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청춘'에 고상한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가까웠으며, '기성세대의 자기중심적 시선'이 담겨있는 문장일 뿐이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말에 담긴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들의 청춘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세대'라는 것이 시간의 물살에 따라 흘러가야 하는 것임을 모르는 채로, 요즘 애들답지 않은 방향으로 노를 저으며 ’세대‘의 배를 더디게 흘러가게 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열심히 하지 말 걸, 행주를 열심히 빨지 말 걸 하는 후회가 아니다. 차라리 젊은 꼰대가 되어버리거나 아주 요즘 것들이 되어버릴걸 하는 뜻도 아니다. 과거의 노동 윤리를 폄하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 또한 언젠가 그들의 가치로 인정받고 싶었던 청춘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나의 청춘이 이제라도 고개를 돌려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마음일 뿐이다. 그리고 이 알아챔은 누군가 시키는 대로 열정을 다해 살아본 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가치를 믿고 실천해 보았기에, 그것이 지닌 의미를 체득할 수 있었으며 더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다시 자신의 청춘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청춘 시절에 차마 주워 담아 오지 못했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도 '삶에 질문을 던져볼 용기'였다.


’삶에 질문을 던져볼 용기‘

이것은 분명 그 시절 자신과 같은 청춘들이 땀과 눈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는 쥐어지지 못한 채 시간을 타고 흘러와 지금에 머물러있었다. 그들이 일구어 놓은 것은 ‘안정과 풍요‘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믿음과 용기‘였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딸에게 주기로 했다.


나는 다시 나의 청춘을 떠올린다. 나는 지나간 당신들의 청춘이 만들어 둔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리겠다고 다짐했다. 완벽한 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만든 용기 하나를 쥔 채로 나의 청춘은 지금에 도착했다. 이제 나의 차례였다. 지나버린 후에 떠오르는 후회를 미래 세대에 투영하지 않기 위해, 무수히 일어날 새로운 시대에 들려줄 이야기들을 위해, 우리가 그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를 위해, 나는 이제 어떤 틀이나 기대에 숨어 살지 않기로 했고, 나의 세대를 나답게 살아보기로 했다.


나의 부모는 나의 퇴사를 받아들였다.

keyword
이전 02화회사를 사랑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