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명자 May 06. 2021

그녀의 뜨락

- 행복이란 질문에 대한 답지 -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마음으로 연결된 이가 있다. 어릴 적 별명 그대로 우리는 그녀를 둘래미라 부른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엄마처럼 푸근한 맘씨와 바지런함, 그리고 손만 갖다 대면 마법이 일어나는 그녀의 놀라운 손끝에서 시작된다. 7년 전 우리는 청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났다. 워낙 손재주가 좋아서 행사가 있을 때면 꽃꽂이는 기본이고 공간 연출을 기가 막히게 잘 해서 틈만 나면 사람들은 그녀를 찾았다. 오래된 가구나 옷도 그녀의 손만 가면 우아하고 멋스런 것들로 탄생하고, 작은 들꽃이나 소품으로도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한다.


식물도 잘 가꾸고 꽃꽂이, 천연화장품 만들기, 천연염색이 일상인 그녀는 여기저기 강사로 불려 다녔다. 그녀는 학교에서 퇴근하면, 복숭아 농사도 짓고, 자신의 뜨락을 어여쁘게 가꾸면서 산다. 그녀의 솜씨는 자신의 아름다운 뜰을 가꾸던 미국의 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타사 튜터 할머니와 닮아있다. 나는 그녀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경주에서 청도로 부리나케 달렸다.


그녀가 사는 시골집으로 가는 길은 청량하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유월의 신록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생명의 본능과 원시성이 느껴진다. 윤기가 자르르한 이파리 속에는 엄지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감이 포대기에 싸진 아기처럼 자라고 있었다. 청도읍에서 작은 도로를 따라 십오 분 정도 달리면 그녀의 집이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그 집은 그녀의 시어머니댁이다. 어머님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자 작년에 살림을 싸서 아예 시댁에 들어앉아 버렸다. 


차가 집 앞에 도착하자 격하게 환영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남편이 키우는 사냥개 여섯 마리가 번갈아 가며 짖었다. 내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빨래 바구니를 들고나왔다. 바지랑대가 받쳐진 빨랫줄에 함께 빨래를 널었다. 오랜만에 빨래를 마당에서 널어본다. 유난히 색깔이 희다. 


저녁 메뉴는 월남쌈이다. 갖가지 재료를 보기 좋게 썰어서 마당에 있는 테이블로 나왔다. 접시며 냅킨 등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준비하는 법이 없는 그녀 덕분에 근사한 식탁이 차려졌다. 힘들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일이 취미’라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수고도 행복으로 바뀌는 모양이다. 월남쌈, 차, 과일이 있는 소담한 저녁식탁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대나무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앞산을 바라보며 저녁을 즐기고 있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마음에 끼어있던 고통의 찌꺼기들이 하나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 이래서 사람들은 산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동경에 마지않는가 보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간명했다. “행복은 찰나예요. 언제나 행복하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그 짧은 한 마디 속에는 어떤 결기마저 느껴졌다. 그녀는 오래 전 있었던 가스폭발 사고로 얼굴과 손에 화상흉터가 있다. 보기에도 제법 큰 사고였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사를 하고 호스가 연결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가스가 새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가스를 켰는데 거실의 유리창이 모두 와르르 무너질 정도의 큰 폭발이었다. 그 순간이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런 기억이다. 이십 여일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둘째딸 백일이 갓 지난 때였다. 지금은 마음에 그 어떤 상처도 남아있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처음 몇 년 힘들었지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는 말에 그녀는 참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시선에 목매던 나의 삶과 대비되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수백 가지의 식물들로 가득한 그녀의 뜨락은 과히 식물원 수준이다. 다육이에서부터 희귀한 야생화, 화려한 장미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그녀는 매일 퇴근하면 식물부터 가꾼다. 긴 호스로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고 식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녀의 눈빛에는 꿀이 떨어진다. 식물들을 들여다보면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마음도 평화로워진다고 한다. 그런 지금이 너무 좋다고 한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 힘들 법도 한데 그 모든 것도 마음으로 안아주면서 행복을 가꾸며 산다. 이런 저런 마음의 짐으로 괴롭고 힘들었던 나의 젊은 날을 떠올리며 나는 왜 그렇게 나 자신을 옭아매고 살았을까 되돌아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환경에서부터 과감하게 맺고 끊으며 자신의 이유로 자유롭게 삶을 셋팅하는 그녀의 결단력에 박수를 보내본다.

 

어스름해지자 우리는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대산지로 향했다. 얼마 남지 않은 빛이 더 깊고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나는 한참을 서서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물가의 개망초가 바람에 일렁이며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준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가꾸고 빚는가에 따라 찰나이지만 행복으로 되돌려 준다. 그녀의 손길과 정성만큼 그녀의 뜨락은 행복을 선물하고, 자신의 색깔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삶은 나같이 허덕대며 살아가는 나그네의 쉼터가 되어준다.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과 행복감은 그녀가 멀리 있어도 그립게 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그녀의 뜨락에서 구원받는 영혼들이 점점 늘어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기적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