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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명자 May 05. 2021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순간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자 (그림은 엄명자의 '심연')-


시인 김재진은 그의 에세이집에서 “살아있는 시간은 얼마일까?/아프지 않고/마음 졸이지도 않고/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얼마나 남았을까?/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라고 노래했다.

  

누구는 세월이 갈수록 명절이 명절답지 못하다 하고, 어떤 집에는 제사와 성묘 때문에 마음을 삐쭉거리고, 또 어떤 이는 고향 가는 길이 외국 가는 거리만큼 걸렸다고 아우성이지만 어쨋튼 우리가족은 추석 이틀 전에 일찌감치 완전체가 되었다. 서울 사는 딸들이 오니 텅 빈 것 같던 집에 활기가 넘친다.  


추석 전날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식도 하고 철벙철벙 바짓가랑이를 적셔가며 재래시장을 누볐다. 과일과 고기, 떡, 금방 튀긴 오징어튀김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도 샀다. 복잡한 시장 안을 누비느라 우산을 써도 비를 쫄딱 맞았다. 생쥐 꼴이 되어 왁자지껄 농담을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치 살을 부비는 것처럼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앞에 널브러져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느닷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에게 이렇게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지금은 돌아가셔서 함께 할 수 없는 분들을 마음속으로불러 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고모와 고모부, 이모와 이모부……. 그 중에서도 엄마생각이 많이 났다. 솜씨는 별로 없었지만 엄마가 차려내셨던 명절 음식들이 눈에 선하다.   

 

5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 불쑥 불쑥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곤 했다. 운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꾸부정한 노인을 볼 때, 혼자 목욕탕에서 간신히 몸을 씻는 어른을 볼 때,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지나며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낄 때, 옛날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소환할 때.  


멀리 계시긴 했지만 언제까지나 살아계실 것 같던 엄마가 갑작스레 떠나시고 내 영혼엔 구멍이 숭숭 난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장학사로 근무하면서 점심시간이면 교육청 뒷산을 산책 삼아 오르곤 했는데, 나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아담한 꿀밤나무 하나를 엄마나무로 정했다. 자그마한 키 였지만 억척스러웠던 엄마와 꼭 닮았다. 나는 엄마나무를 안아보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엄마, 엄마가 있는 하늘나라는 어떤가요? 저는 이곳 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꿋꿋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가 안을 때 세상에 혼자 버려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을 받으며 안정감을 느낀다. 그것이 설상 ‘엄마나무’처럼 가상의 것이었을지언정.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부쩍 사람들을 많이 안아주게 된다.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과 친구들과 또 우리 가족들과. 포옹을 하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 그 동안 외로웠던 마음, 상처받은 마음도 모두 스스로 녹아버릴 것만 같다.   


전교 50명 남짓한 시골 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할 때였다. 바쁜 담임 선생님도 도울 겸 나는 상담교사 역할을 자처했다. 학교에 적응을 못하거나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학생들과 보건실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어느 날 6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편지 한 장을 보여주셨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 누나와 함께 사는 J는 멀리계신 엄마에게 이렇게 썼다.  


“안녕하세요? 엄마 저 J예요. 그런데 요새 너무 슬퍼요. 왜냐하면 집에 엄마가 없으니깐 학교 갔다 오면 엄마처럼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집에 있으면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이 먹고 싶어져요. 그리고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도 그리워요. 아빠가 엄마를 싫어하셔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아요.”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이 먹고 싶다는 말, 아빠가 싫어해도 나랑 같이 살자는 J의 절절한 말에 눈물이 났다. 안타까웠다. 텅 비어버린 그의 마음을 온전히 채워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가끔 J랑 보건실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간식도 나누어 먹으면서 마음으로 그를 안아주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마음이 되어주었다. 그 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장학사로 전직을 하게 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J에게 세계지도와 그가 좋아하는 역사 책 한 권과 장문의 편지를 선물로 준비했다. 편지에는“엄마는 멀리 계시지만 늘 J를 지켜보고 계시고 너를 사랑하신단다. 엄마 말고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힘을 내렴.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고 썼다. 지금쯤 J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랑 다시 만나서 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가 없어도 꿋꿋하게 잘 컸을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며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면 의식을 깨우고 순간순간을 사랑해야 하리라. 너무 미래의 것도 걱정하지 말고 짧게짧게, 너무 멀리도 보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리라. 내어주는 사랑만큼 우리의 가슴도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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