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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명자 May 05. 2021

당신은 기적입니다

- 오늘도 살아있음이 주는 행복을 느껴 보세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저녁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등과 앞차의 라이트 불빛이 자꾸만 흐려진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지원 선생님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지금 이순간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늘은 이번 학기 첫 글쓰기 스터디 모임이 있던 날이다. 나는 그 모임에서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다. 휴일도 반납하고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학인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모두 교육 분야에 일을 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교대 강의실에서 스터디를 하는 동안 창밖엔 태풍 ‘타파’ 로 거센 바람을 동반한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가끔 ‘윙윙’ 하고 귀신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깥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지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들은 이야기에 쏙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 중에서 지원선생님의 이야기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늦잠 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등을 손으로 쓸어주며 “얘들아, 꽃들이 너희들 깰까봐 일어나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단다. 빨리 일어나렴.”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깨우곤 했다는 지원선생님을 보면 금방이라도 동화 속에서 빠져나온 소녀 같다. 연구회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었지만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특히 소외 계층의 어린이나 노인 분들께 그림책을 통해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50초반의 프리랜서이다. 아직도 아침마다 남편에게 뽀뽀를 선사하고 나온다는 그녀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매사에 감사함을 전하는 그의 표정에서 ‘어찌 이리 순수한 분이 있을꼬?’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때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머리가 깨지고 온 몸이 부서져서 열 달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뇌수술 후, 거의 한달 동안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골반은 부서졌지만 수술을 할 수 없었고, 다리도 여기저기 철심을 박았다. 그녀는 꼼짝 달싹 못하는 상태로 병원에서 8개월을 누워 지냈다. 정형외과 수술을 세번이나 거친 뒤, 10개월 만에 발을 땅에 디딜 때 그녀는 찌릿찌릿함을 느꼈단다. ‘어린아이가 처음 발을 땅에 디딜 때 이런 느낌일까?’ 하고 땅을 밟을 수 있음에 더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단다.  


그녀는 병원에 있는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지인들이 끊임없이 문병을 와 주었고, 퇴원할 때는 대학병원 식구들이 축하 파티를 해 주었단다. 모두들 다시 살아나 걸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지금도 눈이 완벽하게 회복이 되지 않아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複視)가 있지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서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 “퇴원해 보니 집은 병원비로 날라 가고 1,500만원 짜리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해 있었어요. 그래도 돈은 벌면 되니까 괜찮았어요.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라고 한다.  


하마터면 아내를 잃을 뻔한 그녀의 남편은 살아 돌아온 그녀에게 “당신은 기적입니다. 당신은 나의 아내 지원입니다.”라고 나지막하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이 말을 할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다시 살아온 아내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지 그녀의 남편이 되어 보았다. 늘 아웅다웅하며 서로를 미워했던 우리 부부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랑을 시작할 때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았다. 나에게도 남편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고,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야간 고등학교를 다녀가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동생 뒷바라지를 했던 그녀는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단다. 사고가 난 후 기억력이 심각하게 나빠진 그녀에게 남편이 어느 날 “당신은 책도 좋아하고 공부 의욕도 많으니 대학을 가면 어떨까요? 라고 대학을 보내주었단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그녀는 지금의 삶이 기적이라고 한다.  

그녀는 결혼 후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 날 향교에서 다문화가정 주부들의 한복 체험을 돕고 있는데,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강사가 자신의 손을 덥석 잡더니 “아이구 이게 누구세요?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저의 인생이 달라졌잖아요.”라고 했단다.  


교통사고가 난 후 그녀는 교육청 평생교육원에서 주관하는 그림책 연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분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연수에서 “경력이라곤 보육교사 과정 1년 연수를 한 것이 다였어요. 김치를 잘 담그고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잘 읽어 준다는 이야기까지 써서 스무 군데에 이력서를 냈어요. 능력이 없던 저도 이런 자리에 있는데 여러분은 충분히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을 거예요. 힘을 내세요!” 라고 했단다. 이 말을 계기로 한복 체험 강사는 그때부터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소외된 학생들에게 눈을 맞추고 그림책을 통해 행복을 선물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그녀는 늘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한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기적 같은 삶을 동화로 엮어 새로운 기적을 불러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이 되어 한껏 웃음 짓는 그날이 올 거라 믿으며 '더 빡센 스터디 그룹 글쓰기 과제로 어떤 것을내 볼까?' 궁리 중이다.   



신발을 신는 것은

삶을 신는 것이겠지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건너간 

내 친구는

얼마나 신발이

신고 싶을까

살아서 다시 신는 

나의 신발은 

오늘도 희망을 재촉한다. -이해인의 시 「신발을 신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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