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코리안 시리즈
캐나다에서 지낼 때 한국에 없는 '팁 문화'가 어려웠다. 메뉴판에 있는 금액에서 세금 13%와 팁 15%가 따로 붙었다. 종업원이 특별히 친절했을 땐 팁을 넉넉히 주기도 했고, 반대로 팁을 정말 주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낸 적도 있다.
부둣가에 있는 한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가격이 비쌌지만 캐나다 유학이 끝날 시점이라 큰 맘먹고 방문했다. 그런데 주문한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식당에 들어온 사람들은 벌써 식사를 시작했는데 왜 내 것만 안 나오지? 종업원을 불러 두 차례 이야기하고 받은 스테이크와 파스타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파스타는 불어 있었고 스테이크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심지어 질겼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받은 음식이 고작 이거라니. 그사이 해도 다 저물었다. 어둑한데 양초 하나 두고 테라스에 앉아 있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동양인이라 그런 걸까.
음식을 반쯤 남기고 계산하기 위해 빌즈를 받았다. 도저히 팁을 내고 싶지 않았다. 음식값만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종업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너네들 동양인이라서 모르나 본데, 캐나다는 팁 문화가 있어. 무조건 20%는 내야 되는 거야. 다시 결제해."
"나도 알아. 그런데 음식은 차갑게 식어있었고 응대는 너무 무례했어. 팁을 내고 싶지 않아."
"너네가 모르나 본데 캐나다에서 팁은 무조건 내야 되는 거야. 팁 내놔."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랬다. 내가 백인에 금발이었대도 쟤들이 이렇게 행동했을까. 억지로 팁 20%를 결제했다. 다음날 학교 선생님 마크에게 물어봤다. 상황을 모두 설명하자 마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람들 정말 무례하다. 팁은 강제가 아니야. 더군다나 그렇게 음식이 차갑게 식어 나왔고, 다 불었다면 더더욱.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런 상황이라면 팁을 안 주는 게 맞아."
노트북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는지 충전기를 꼽지 않으면 전원이 꺼졌다. 하긴 이 노트북을 쓴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배터리를 갈기 위해 LG 서비스 센터에 방문했다. 수리 기사님은 새까매진 나의 노트북을 이리저리 보고는 말씀하셨다.
"4년 동안 고장 없이 쓰셨나 봐요. 노트북 수리로 처음 오셨네요."
"맞아요. 노트북이 너무 좋아요. 아직도 잘 쓰고 있어요. 이래서 가전은 모두 LG만 써요."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하하. 노트북 들고 오랜만에 오셨으니까 제가 깨끗하게 닦아드릴게요!"
수리 기사님은 가전제품용 물티슈로 나의 꼬질꼬질한 노트북을 닦아주셨다. 일반 물티슈로 닦으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덧붙여서 키스킨까지 갈아주셨다. LG 제품을 오랫동안 잘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셨다. 자사 제품을 향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웃다 보니 배터리 교체도 끝나 있었다. 서비스 센터에 오는 게 이리도 즐거운 일이었던가. 수리를 마치고 배터리값만 결제하고 나오려는데 마음이 찜찜했다. 이 모든 친절이 공짜라니.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부탁하지 않은 일을 해주다니.
요즘 마스크를 하루 종일 써서 그런지 지태의 얼굴에 여드름이 올라왔다. 팩을 사려고 강남에 있는 러쉬에 들렀다. 러쉬는 특이하게도 손님이 입장하면 전담 직원이 한 명씩 붙는다. 필요한 것을 찾아주고 설명과 함께 제품 추천도 해준다. 평소엔 다가오는 직원이 부담스러워 필요한 물건만 빨리 사고 나오는데 이날 만난 직원은 좀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지태의 피부를 보더니 원래 쓰던 팩은 안 된다고 했다. 오히려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다며 다른 제품을 추천해줬다. 샘플로 토너와 로션도 넣어줬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비누도 추천해줬다. 1:1 피부과 상담을 받은 기분이었다. 제품 가격만 지불하고 나오는데 마음이 찜찜했다. 이렇게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무료로 듣다니. 한국에 팁 문화가 있었다면 이 사람은 돈을 엄청 벌었을 것 같았다.
아무런 기대 없이 바른 샘플은 다음날 지태의 피부를 건강하게 바꿔놓았다. 가격이 비싸 망설였는데 당장 사러 가기로 했다. 그날 만난 직원에게 감사하다. 요청하지 않은 피부 상담을 기꺼이 해줬다. 대충 손님이 필요한 것만 줬다면 일하기에 편했을 것이다. 물건을 하나 더 판다고 보너스를 받는 건 아니니까.
대가가 없어도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심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다. 친절함이 공짜인 나라가 여기, 있다.
추신) 광고 아님 (광고였으면 좋겠지만) 내 돈으로 내가 사고 남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