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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언 Aug 15. 2022

어차피 오늘이 그리워진다

이집트를 떠나 터키로


만료된 이집트 비자를 들고 공항에 왔다. 30일 비자로 36일을 체류한 것이다. 보통은 비자가 만료되면 불법체류자로 간주하여 향후 몇 년간 입국 금지를 한다거나 비싼 벌금을 물게 한다. 무료 수하물에서 1kg만 넘겨도 공항 입구에서 걸릴까 봐 밤새도록 공항 검색대 후기를 찾아보고 잠들기 일쑤였던, 걱정이 많아서 준비를 많이 하고 위험한 선택은 잘 하지 않던 내가 안전하게 비자 연장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바로, 간땡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30일 비자에, 공식적인 안내는 없지만, 14일의 유예기간이 있다는 선배 여행자들의 후기를 보고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생각보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고 쉽게 풀릴 때가 많았다. 허무하게 해결되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걱정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되뇐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래도 막상 출국 심사대 앞에 서니 긴장이 됐다. 내 여권을 유난히 길게 들여다보는 직원의 눈빛이 뭔가 수상하다. 아니, 지금 수상한 사람은 바로 나다. 직원은 도장이 찍힌 내 여권을 넘겨보면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애써 아무 문제 없는 척,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의 웃음에 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출국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땡큐! 굿바이!”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면의 적군과 치열하게 싸웠다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며 나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와의 싸움에서 번번이 내가 패배했었는데 이제야 그에게서 좀 자유로워졌다. 바로 ‘걱정’이라는 놈이다.


어렸을 때부터 걱정이 많은 게 늘 걱정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해가며 스트레스를 받고 거울을 보며 대답할 말을 미리 연습했었다. 세계여행을 떠나서도 걱정하는 습관은 여전했는데, 특히 여행 초기엔 ‘걱정’의 공격을 많이 받아서 삶을 누리거나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마치 숙제를 하듯이 여행을 다녔다. 매일매일 유익한 무엇인가 해내지 않으면 내가 무용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 놓고 휴식하지도 못했다. 쉬느라 일정을 늘리면 귀국 날짜가 늦어져 취업 준비할 때 불이익이 생길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으면서 나중 걱정에 오늘을 놓친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를 걱정하며 오늘 행복할 시간을 저축할 필요가 있었을까. 저축한다고 모아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여행하면서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스트레스받고 마음 쓰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걱정하는 시간에 비례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니까.


오랫동안 나를 좀먹었던 ‘걱정’을 떨쳐버리는 일이 이리도 간단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 비결은 딱 한 가지였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 봤자 별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만료된 비자가 문제 되어봤자 벌금밖에 더 내겠냐는 생각이 나를 자유롭게 한 것처럼.


‘걱정’과 한 패거리로 오늘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나를 방해하는 적군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갈망’이라는 놈이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면서 오늘과 비교하는 습관은 네팔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설국열차 꼬리 칸처럼 북적거리는 인도 기차 안에서 지태에게 말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히말라야가 보이는 호텔에 가자고. 인도 사람들 틈에 섞여 뒤척이기도 힘든 좌석에서 짐짝처럼 누워있는 지태가 좋다고 웃어 보였다.


여행하다 보면 공휴일이나 평일, 주말에 대한 구분이 사라진다. 모두 여행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안부를 묻고 떡국을 먹는 설날에도 우리는 인도 사막에서 낙타 똥냄새를 맡고 있느라 설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는 한 달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트리를 설치하고 가족이 모여 선물을 교환하던 기억 때문일까. 어쩌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한 달 전부터 길가에 울려 퍼지는 캐럴과 반짝이는 전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님 생일에 내가 즐기는 게 예수님에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날 하루만큼은 근사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거금을 들여 히말라야가 창밖으로 가득 보이는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지태는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호텔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근사했다. 사방 어디나 창밖으로 히말라야의 산등성이가 보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침대에 누워있을 때, 심지어 욕조에서 때를 미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일출을 보려고 굳이 ABC까지 가지 않아도 알람 소리에 커튼만 걷으면 붉게 물든 피시테일을 감상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 프런트 호텔 방에서 보는 일출


“우와! 지태야, 여기 너무너무 멋지다! 휴, 그런데 우리 한국에 있었으면 뭐 했을 것 같아? 비싼 레스토랑에 갔을까? 아니면 밤샘 피시방? 아, 게임하고 싶다.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 그치?”


“아마 그랬을 거야. 그래도 매년 크리스마스에 오늘을 그리워하겠지. 네팔에서 크리스마스라니! 살면서 언제 또 히말라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까?”


그의 말을 듣는데 아차, 싶었다. 살면서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국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니. 컴퓨터 게임이 하고 싶어서 눈앞에 있는 히말라야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나 말고 또 얼마나 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몰랐다. 세계여행이란 평생의 꿈을 이루기만 하면 더없이 행복할 줄만 알았다. 그러나 막상 여행하고 있자니 부족한 것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초고속 인터넷이나 입맛에 맞는 한식당, 다음 날이면 도착하는 택배 서비스 같은 것들은 한국에만 있는 것들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부럽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한국이 아니라서 이따금 불행했다. 오늘에 감사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만 떠올렸으니 불행할 수밖에.


저것만 가지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이것만 이루면, 이것만 해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대신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삶을 먼저 사랑해야 했다. 아쉬움이란 마음이 만드는 허상이다. 가치를 두지 않으면 그 의미도 사라진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하니 그토록 갈망했던 것들이 가치를 잃고 사라졌다. 컴퓨터 게임도, 잘 차려입은 내 모습도, 한국에서의 편리함도 모두.


알 수 없는 미래는 언제나 걱정되고, 가지지 못한 것은 언제나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내가 있는 이곳에 먼저 집중해야겠다. 조급해할 필요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이 그리워질 테니.


비행기 착륙 소리와 함께 터키에 도착했다. 유심을 사려고 공항에 있는 핸드폰 가게에 들렀는데 최소 금액이 4만 원부터 시작했다. 4만 원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도 제일 저렴한 요금제가 4만 원인 곳은 없었다. 여행 초기였다면 국가를 이동하기 전에 공항에서 숙소 가는 법이나 유심 가격 같은 정보를 열심히 찾아왔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거의 준비를 하지 않았더니 이런 변수가 생겼다. 구경하던 유심을 내려놓고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았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받았다.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찾아 저장하고 스타벅스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일단 숙소에 도착만 하면 다음 일정은 어떻게든 될 거야. 늘 그랬듯이.’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제가 준비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태와 언언의 세계여행은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세계를 한 바퀴 돌아 그들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남은 이야기는 <어차피 오늘이 그리워진다>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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