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우리 손의 나무 반지가 깨져버린 거다.
흘러가는 자연의 한 부분이었던 거고.
소개팅도 아닌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카페에서 3-4시간 정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될 까.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책을 교환하기로 한 날이었다.
카페에서 보자고 한 당신에게 난,
낯섬이라는 두려움에 사람 많은 곳에서 보자 했고
당신은 알겠다고 그때 뵙자고 했다.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걱정에 책을 포장하고,
옷장에서 가장 나다운 옷을 골라 입었다.
도착한 교보문고에선 여전히 기웃거리는
세계문학전집 정렬 앞에서 당신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내가 읽고 싶었던,
내 책장에 꽂아두고 싶었던 시집을
고이 들고 있는 걸까.
인스타그램으로 짐작하고 싶지 않을 만큼
당신이 궁금했다.
기다리고 있다니 빨리 갈게요 하며
금방이라도 뛰어 온 것 같은 숨소리를 숨기는
당신의 수줍음과 눈이 마주쳤다.
책이 담긴 봉투를 들고 있는 나무반지도 함께.
이 사람은 내가 누군지 알고
깨끗한 미소를 짓는 거지.
경계를 일 분 만에 풀어버리는 당신을
이대로 집에 보내기 싫었다.
아른거릴 것이 뻔하니.
결국 내가 카페 가자 했다.
생각해 보면 네가 입었던 바지 티셔츠
마스크 안으로 보이는 미소 나긋한 어조
어른스러워 보이는 네 모든 게 좋았나 봐.
짧은 그 미세한 순간에도
며칠 몇 달 뒤에 나와 당신이 보였나 봐.
아는 카페가 있다며 당신은 날,
스터디한다는 강남 투썸플레이스로 데려갔고,
빠른 당신의 발걸음을 쫓다 발걸음이 빠른 것 같다 말했다. 빠르셨냐며 긴장했다며 내 걸음에 맞추는 당신에게 난 시간을 주고 싶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몇 시간을 얘기했던 걸까.
앞 뒤 테이블에 사람이 몇 번이나 바뀐지도 모른 채
우린 굳건히 의자에 앉아 무릎을 마주 보여
서로 눈동자 하나 말씨 하나에 얼마나 집중했던 걸까.
대화가 끊기지도 어색한 침묵이 흐르지도 않은 채
목소리로 가득 채운 우리의 대화의 틈이.
한 마디만 더 하면 우리가 금세
손을 잡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숨소리가.
봐. 이것 봐.
벌써 우리가 되었잖아.
가끔 궁금해.
데미안은 잘 읽었는지.